[씬터뷰] 1%의 희망으로도 반짝반짝 빛이 나요 - 보통의 혁신가 1기 이유미 님


"이왕이면, 담배꽁초를 한 곳에 모아주면 어떨까요?"

보통의 혁신가 1기 <이왕이면 팀>


충남 아산의 한 아파트 화단 곳곳 손바닥만 한 팻말들이 걸려있다. 연둣빛 팻말에는 알록달록한 스티커가 붙는다. ‘이왕이면, 담배꽁초를 이 주변에 모아주세요’ ‘이왕이면, 담배꽁초를 되가져 가주세요.’ ‘이왕이면, 담배꽁초는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 아무렇게나 담배꽁초를 바닥에 내버리지 말고 이왕이면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의 말들이다. 담배꽁초 때문에 함께 사는 주민이, 아이들이, 바다 동물이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말들이 손 글씨로 쓰이기도 한다.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직접 쓴 큼직하고 삐뚤빼뚤한 글씨가 눈에 띈다. 글씨체의 주인인듯한 아이의 이름이 쓰인 팻말도 있다. 이 팻말들은 팀 ‘이왕이면’이 만든 흡연매너 당부 캠페인 키트의 구성품인 팝업 태그다. 이렇게 주민들이 직접 쓴 글씨로 채워진 팝업 태그는 아파트 단지 내 이곳저곳, 흡연자가 담배를 피우는 공간들에 부착된다.

이 프로젝트를 실행한 이유미 씨는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보통의 주민이다. 인터뷰 장소는 ‘즐거운 월랑이 작은 도서관’이라는 아파트 단지 내의 커뮤니티 공간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그곳에 팝업 태그가 비치되어 있었다. 이 캠페인이 많은 공감을 받은 만큼이나 팝업 태그에서 다양한 글씨체를 볼 수 있었다. 이제는 팝업 태그가 부족할 정도라면서 카드를 더 제작할 예정이라고 유미 씨는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단지 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인터넷 카페에서 외로이 홀로 목청을 높이던 유미 씨가 직접 발로 뛰는 활동가가 된 것은 보통의 혁신가를 만나고부터다. 유미 씨는 팀원이었던 이수정 씨와 조력자들을 만나 용기를, 변화를, 함께한다는 감정을 겪었다고 말한다.

 


작은 실천을 위한 흡연매너 당부 캠페인

오늘 굉장히 분주해 보이시는데요?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제가 작은 공방을 하나 운영하고 있는데, 동아리 활동을 한 회원들이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게 되었거든요. 그 일로 조금 바쁘네요.

 

하고 있는 활동이 많으신가 봐요. 자기소개를 해주실 수 있나요?

충남 새활용 협동조합의 이사로 활동하면서 마을교사로 초중고교, 성인을 대상으로 환경 교육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이제 아이들이 각각 9살, 8살이 되었는데요. 아직까지는 엄마가 집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어린아이들이죠. 엄마가 그냥 펑펑 놀고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은 아직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육아가 참 어려워요. 그래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이 작은 도서관에서 사서 활동도 하고 있어요. 전시도 이곳에서 하게 되었고, 보통의 혁신가 활동을 할 때도 이 공간에서 많이 협조해주셨어요.

 

그래서 도서관 한편에 캠페인 때 쓰던 팻말들이 놓여 있었군요. 아이들이 직접 손글씨로 쓴 팻말들이 너무 귀여워요.

그렇죠? 저희는 팝업 태그라고 부르는데요. 아이며 어른이며 캠페인에 관심 있는 분들이 팝업 태그를 많이 작성해주셨어요. 다 모아서 아파트 곳곳에 부착하려고요. 지금 207동 근처 공간에 설치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반응이 좋아요. 이제 아파트 전체로 확대해보려고 합니다.

 

보통의 혁신가에는 어떻게 참여하시게 되었나요?

충남사회혁신센터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었어요. 인스타그램 게시글들이 눈에 확 들어오거든요. 보통의 혁신가에 관한 게시글이 올라왔을 때도 그랬어요. 우선 한 번 참여해 보래요. 일단 신청서를 내보래요. 그리고 설명까지 듣고 나서 본인이 해볼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때 도전을 결심해도 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저는 뭘 혁신해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어요. 그저 올해는 그게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다짐하던 참이었어요. 그래서 도전해보기로 했죠. 정말 너무 재미있었어요. 신나게 캠페인을 진행하고, 교훈도 되고, 실천할 방안까지 나온다니! 흥미롭고 관심도 높아지더라고요.

 

신청서엔 어떤 내용을 담으셨어요?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우수관이랑 화단에 버리고 간다는 문제를 썼어요. 아이들하고 아파트 내에서 쓰레기 줍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아이가 그러는 거예요. “엄마, 담배꽁초 쓰레기가 제일 많아요.” 이 말을 듣는데 어른으로서 너무 창피했어요. 꽁초를 버리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대부분 성인일 테니까요.

 

사람들이 담배꽁초를 왜 아무 데나 버리게 되는 걸까요?

담배꽁초를 쓰레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큰 쓰레기는 그래도 아무렇게나 길에 버리지 않잖아요. 인식과 습관을 바꿔야 하는 문제죠. 그래서 꽁초를 되가져가 달라거나 구역표시를 한 곳에 꽁초를 모아 달라는 메시지를 담기로 했어요. 팝업 태그 설치를 한 캠페인 첫날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아무 데나 산발적으로 버려져 있던 꽁초가 일반쓰레기 버리는 곳에 잔뜩 모여 있는 거예요. 깨달았어요. 흡연자들도 지금까지 몰랐을 뿐이라는 걸. 앞으로 변화될 사람들의 모습이 상상이 돼서 되게 희망적으로 봤어요.

 


함께하는 감각이 주는 힘

팝업 태그 설치는 어디에 어떻게 하셨어요? 설치할 때 아파트 주민들의 도움을 받으셨나요?

아니에요. 이왕이면 팀에서 다 같이 와주셔서 한 거예요. 우리 아파트에 여덟 곳 정도 설치했고요. 같은 팀이었던 이수정 씨 아파트는 규모가 크지 않은 곳이라 후문에만 설치를 했어요. 제가 철사로 공예를 하거든요. 그걸 살려서 제가 팝업 태그를 귀엽게 달아 드렸죠.

 

이수정 님이 사는 아파트는 ‘우리 집’이 아니잖아요. 내 집처럼 달려가서 그렇게 하신 동기나 이유가 있나요?

팀이잖아요. 팀이니까. 당연한 거죠. 수정 씨도 내 집처럼 우리 아파트에 오셔서 함께해 주셨는걸요.

 

우문에 현답을 하시네요. 이런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으로 뭉쳐서 활동한 느낌은 어떠신지 궁금해요.

재미있어요. 이전에 아파트 게시판에 쓰레기 버릴 때의 기본예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어요. 저 혼자서만 그런 얘기를 하니까 오히려 공격을 받을 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팀으로 활동하니까 지지받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더 으쌰으쌰 하게 되고요. 처음 도전하는 거라 부담을 가지고 있었는데 팀이 있으니 의지도 되고 의견을 나눌 수도 있었죠. 기대보다 훨씬 좋았어요. 혼자였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팀원들이 함께여서 할 수 있었던 거니까요. 정말 든든했어요.

 

이수정 님과는 어떻게 한팀이 되었나요?

보통의 대화에서 제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저랑 같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대요. 저랑 팀이 되면서 수정 씨 본인의 의제를 바꾼 거예요. 정말 고맙고 미안하죠. 괜히 폐 끼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합이 정말 잘 맞았어요. 저 같은 경우는 재료가 많은 곳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튀어나오는 사람이라면, 수정 씨는 아무것도 없는 데서 아이디어가 샘솟는 정말 천재적인 분이에요. 수정 씨가 옆에서 한마디 해줄 때 거기서 얻는 힌트들과 조력자님들의 조언도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저를 붙잡고 같이 가자고 해줘서 무척 고마워요. 수정 씨가 없었다면 저는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이왕이면’이라는 팀 이름도 수정 씨가 아이디어를 낸 거예요. 수정 씨가 없었다면 이왕이면 팀은 없었습니다.

 


투덜투덜이 아닌, 꿈틀꿈틀 움직이는

보통의 혁신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무엇인가요?

보통은 플랜카드를 거는 것 정도를 생각하잖아요. ‘담배꽁초를 버리지 마세요.’ 같은 문장이 쓰인 플랜카드요. 그런데 캠페인을 그냥 플랜카드 한 장으로 끝내려고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어떡해야 하나 되게 막막했었어요. 여러 번 고민한 끝에 재미있게 접근하기로 했죠. 자연 친화적인 느낌으로 초록색 팝업 태그를 만들고, 철사로는 애벌레처럼 더듬이도 만들어 놓으니 아이들도 좋아하고요. 긍정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보통의 혁신가를 겪은 전후를 비교해 볼 때 개인적인 성장이나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책임감이 생긴 것 같아요. 아무도 시키지는 않았지만, 제가 모니터링을 하고 있어요. 실제로 버려지는 담배꽁초가 줄어드는지 혹은 한 구역에 모이는지요. 저의 시민의식이 성장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정체성이 변하는 느낌도 받았어요. 왜냐하면, 그냥 주부로만 살다가 ‘혁신’이라는 말을 만나서 실천하는 사람이 된 거니까요. 그전에는 그냥 투덜투덜하기만 했다면, 지금은 꿈틀꿈틀 직접 행동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어요. 보통의 혁신가는 마무리되겠지만, 꾸준히 모니터링도 하고, 이 캠페인이 자리 잡힐 때까지 계속해보려고요. 그게 목표예요. 현재로서는.

 

혁신이라는 말을 만나고 꿈틀꿈틀 움직이는 사람으로 변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유미 님에게 혁신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혁신이라는 말이 조금 어렵긴 해요. 하지만 지금은 어렵게만 느껴지진 않아요. 이전엔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사람들만의 도전으로 여겼었다면, 지금은 ‘작은 것 하나라도 바꾸려는 의도와 노력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구나. 이게 혁신이구나.’ 하고 생각해요. 커다란 바다만 바라보다가 작은 시냇물에서도 내 역할을 찾아낼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이번에 보통의 혁신가에서 이왕이면 팀을 포함해 9개의 의제가 나왔죠. 그 9개의 활동이 진행된 힘은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하세요?

희망이죠. 제가 보통의 혁신가에 참여한 첫날 희망을 봤어요. 다른 분들도 그랬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절망으로 그냥 끝나 버렸을 텐데 희망이 보였기 때문에 계속 도전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변화에 대한 희망이요. 내가 도전해서 성공했다는 식의, 그런 희망 말고요. 내 주변에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계속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절망 1%는 아무 표시도 안 나요. 하지만 희망은 1%만 있어도 반짝반짝 빛이 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