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터뷰] 충남사회혁신센터 강정진 선임매니저 자그마한 실천들이 만드는 변화

보통의 혁신가는

어떤 물음에서 시작되었을까?

 

이 사업을 만든 기획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의 마음속에 떠오른 질문들이 궁금했다. 기획자로서 충남 곳곳의 혁신가들을 지원해온 충남사회혁신센터의 강정진 매니저(이하 ‘제이지’)를 인터뷰했다. 그는 자그마한 변화라도 시민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삶을 이 사업에서 보고 싶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웃음)



충남 내 일상 속 실천가들을 발견하다

“이를테면, 환경문제를 해결하자는 구호나 선언보다, 오늘 커피를 마실 때 일회용 빨대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캠페인을 만드는 게 보통의 혁신가에서는 더 중요하죠.”


보통의 혁신가는 일상 속에서 작은 실천을 해보는 경험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름처럼 가장 보통의 사람들이 모여 일상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문제를 제안한 시민이 직접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찾고, 스스로 기획한 활동을 실행하는 활동가가 된다. 보통의 혁신가를 거친 시민은 어딘지 거창하고 대단해 보이는 ‘사회혁신’이라는 단어를 이전보다 친숙하게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마치 난세의 영웅이 등장해서 지역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꿔주길 기대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역에는 이미 자기 주도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훌륭한 시민들이 많거든요. 이분들이 실행력을 갖거나 ‘할 수 있다’는 에너지를 느끼는 것에 대한 장벽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보통의 혁신가 사업으로 그 장벽을 없애고 싶었습니다.”



내 집 앞에 버려지는 쓰레기 문제도,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며 느끼는 어려움도, 지역에 즐길만한 꺼리나 공간이 없는 상황도 괜찮다. 이것들은 개인이 겪고 있는 문제처럼 보이지만, 보통의 혁신가 안에서는 모두 공공의 문제가 되어 해결해볼 실마리를 갖는 시작점이 된다. 삶 속에서 작은 실험을 시도하는 실천가들이 모이면 가시적인 사회 변화도 일어날 거로 여겼다.


“작은 성취의 경험을 주고 싶다는 게 제 욕심이었고요. 성공하지 않아도, 한계가 있어서 대안이 결국 나오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시민들이 도전해볼 수 있는 사업이 되길 바랐죠.”




보통의 혁신가 시즌1

보통의 혁신가는 지금까지의 주민 지원 사업과는 다르다. 더 다양한 시민들을 포함하기 위해 그 어떤 제약도 두지 않았다. 참여하는 시민들이 이슈를 제안할 때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럴싸한 주제들이 아니어도 돼요. 엉뚱한 주제들을 보고 싶었어요. 저희 내부에서는 ‘또라이 리빙랩’이라고도 불렀는데요. ‘미친’ 사람들이 많이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웃음) 그만큼 헛소리라도 좋으니까 전에 없었던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어요. 무언가에 몰두하는 사람을 ‘미쳤다’고 표현하기도 하잖아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무언가를 가지고 여기에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기존 사업과 정책에서 포함되지 못해 소외 받았던 당사자들이 더 많이 등장해야 한다는 게 첫째였기에 누구든 신청할 수 있도록 지원 절차가 간단했다. 팀을 이루지 않아도, 혼자여도 괜찮다. 보통의 혁신가에서는 뜻 맞는 팀원들을 결합하고 팀을 조직해준다. 경험이나 기획력이 없더라도 참여자가 기획을 향상시켜 실행할 수 있게 하는 조력자 그룹과 디자이너를 연결한다. 공론장 안에서 나온 여러 사회 문제에 공감하고, 그것을 해결해보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력하겠다는 게 제이지의 말이다.


“충남 구석구석 홍보도 엄청 많이 했거든요. 큰 도시인 천안아산뿐만 아니라 작은 지역들에도, 인구가 많지 않더라도 문제를 느끼는 주민들이 살고 있을 테니까요. 그런 지역에도 기회가 돌아갔으면 했어요. 그래서 태안과 보령 같은 곳에 현수막을 많이 달았어요.”


지원한 참여자는 30명이었다. 여기에 10명의 조력자와 10명의 디자이너가 함께했다. 몰입이 필요한 일이기에 혁신가가 제안한 문제에 충분히 공감하고 관심이 있는 조력자와 디자이너를 매칭했다. 자문회의 그리고 참여자들이 서로의 문제와 의견을 나누는 공론장인 ‘보통의 대화’도 수차례 진행되었다. 이 보통의 대화에서 참여자들은 조력자와 함께 ‘보통의 기획’이라는 의제 발전 과정을 거쳤다. 이를 통해 구체성을 띠게 된 9개의 의제가 도출되었고, 문제 해결에 대한 아이디어의 실행을 위해 디자이너가 캠페인의 도구를 디자인했다. 디자인된 결과물을 가지고 참여자들은 ‘보통의 실천’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가로서 활동했다. 사업을 마무리하는 6월에는 조금 색다른 성과공유회를 진행했다.


“보통 성과공유회 할 때 센터에 모여서 발표 같은 걸 하잖아요. 저희는 성과공유회도 지역에서 열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각자 활동했던 지역에 주민들이 모여서 만들었던 물품들 깔아놓고 같이 축하해도 해주고 맛있는 것도 먹고 힘들었던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자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성과공유회를 끝으로 보통의 혁신가는 종료되었지만,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과 멤버들의 의지가 확인되는 팀은 사업비의 규모를 확대해 후속 지원할 계획이다.

“보통의 혁신가 시즌1이 끝나는 거죠. 이번 프로젝트를 즐거워하시고 조금 더 발전시켜서 확산하고 싶다는 분들에게 이다음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지역 안에서 이 과정이 선순환될 수 있도록요. 7월부터는 ‘후속 지원 리빙랩’ 사업으로 그 간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도록 지원할 예정입니다.”


혁신, 나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기어려움도 있었다. 보통의 혁신가에 참여하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게 하고 싶었다. 충남이라는 넓은 지역 안에서 활동하는 각 참여자의 상황을 고려해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한 참여자분이 250일밖에 안 된 아기를 대신 돌볼 사람이 없어서 현장에 오실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갑작스럽게 온라인으로 연결해 운영하기로 했는데, 허술했죠.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그래도 이런 노력 끝에 그분이 당진 지역의 팀으로 끝까지 함께 참여하시게 되어서 다행이었어요.”

거리 문제로 이탈되는 참여자가 없도록 앞으로의 보통의 혁신가는 충남 내 지역에 집중해 운영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보통의 혁신가 부여편, 계룡편 하는 식으로 지역의 이름을 달아볼 수도 있겠죠. 그 지역의 조력자들이 발굴되면 프로젝트팀을 만들어서 사업을 실행해보는 기획도 하고 있어요.”

충남 구석구석에서 벌어진 이 재미있는 작당들이 지역사회에 어떤 의미와 화두를 던지고 있을까. 제이지는 보통의 이웃들이 펼치는 일들을 본 이곳에 사는 많은 사람이 ‘나도 해볼 수 있다’고 마음먹기를 원한다고 했다. 개인이 가진 문제가 곧 공공의 이슈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하고 싶다고. 보통의 혁신가는 아주 낮은 단계부터, 자기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부담 없이, 기꺼이 용기 내서 해볼 수 있는 규모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충남에 커다란 변화와 의미를 낳을 것이라는 기대로 이 사업을 시작하지는 않았어요. 이분들을 잘 서포트하면 나중에 돌아봤을 때 지역 차원에서 어떤 의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요. 개인이 느끼는 효능감이 커지고, 이 같은 그룹이 더 많이 생겨나면 지역을 바꾸어나갈 동료들이 늘어나는 거니까 그걸 제일 많이 기대했어요.”

앞으로는 이 소중한 이야기들을 잘 기록하는 게 과제다. 보통의 혁신가를 진행하며 제이지도 지역의 문제들을 바로 알게 되었다. 또 그것을 시민들의 목소리로 직접 전해 들으면서 모든 이슈가 자기 삶에 와 닿는 경험을 했다. <매거진 보통의 혁신가>의 페이지마다 시민들이 가진 다채로운 본래의 모습이 비치고 묻어나길 바랐다. 살며 느끼는 수많은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렇게도 해결해볼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읽다가 몇 초라도 더 머물 수 있는 책이 되면 좋겠어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일까? 하고 머뭇거리는 시민이 보았으면 해요. 단지 성과를 중심으로 사업을 논의하는 공공에서도 이 책을 봤으면 하고요. 그래서 정책 몇 개 만들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의 변화를 보는 게 성과라고 이야기하는 순간이 오길 바랍니다.”

서로 지치지 않도록 긴 호흡으로 사업을 이어나가겠다는 다짐을 들으며 인터뷰를 마쳤다. 현장에 나갈 때마다 보통의 혁신가들에게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듬뿍 얻고 온다고 말하는 제이지의 목소리에서 내내 일에 대한 자부심과 혁신가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시즌을 더해가며 더 흥미진진해질 보통의 혁신가들과의 만남이 기대된다. 이들의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이루어낼 공공의 변화들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