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터뷰] 점에서 선으로 면으로, 그렇게 혁신! 보통의 혁신가 1기, 이나영님

버스를 놓치지 않고, 타고 싶어요.

점에서 선으로 면으로, 그렇게 혁신!


약속 장소에 나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린다. ‘잠시 후 도착’이라며 정류장 전광판의 표시가 바뀌고, 달리던 버스는 속도를 천천히 줄이며 멈춘다. 버스에 올라타 교통카드를 찍고 자리에 앉는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련의 과정이 어느 날 갑자기 당연해지지 않는다면? 서울에서 천안으로 이사 온 이나영씨는 버스 탑승 준비를 하던 중, 다가오던 버스가 나영씨를 태우지 않고 빠르게 지나쳐버리는 경험을 했다. 버스는 매번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지나쳐버렸다. 결국 나영씨는 대중교통 이용을 포기하고 운전대를 잡았지만 나영씨가 겪은 상황은 마음속에 남았다. 주변의 친구, 익명의 천안아산시민, 미래에 버스를 타게 될 자신의 아이까지 모두가 처한 문제였으므로. 

 

나영씨는 ‘정류장에 사람이 있어도 버스가 지나쳐버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 ‘버스닷’을 만들었다. 보통의 혁신을 통해 시작된 움직임이 ’점‘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닷‘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이 활동이 이어져 선과 면이 되고, 결국 모두가 걱정 없이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풍경을 그려내길 바랐다. “문제의 근본까지 해결할 순 없겠지만, 큰 호수에 돌을 던져 파장이라도 일으키자는 마음이에요” 아무도 그리지 않았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점을 찍고, 호수를 일렁이게 하기 위해 돌을 던지는 마음. 나영씨와의 대화에서 시작하는 용기를 보았다.



내가 해결해야겠다는 결심

안녕하세요 나영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순천향대 빅데이터 공학과 석사 과정 중인, 6살 아이 엄마 이나영입니다. ‘버스정류장에 사람이 있는데도 버스가 지나치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보통의 혁신가에 지원했어요.

 

학교와 육아를 병행하며 바쁘셨을 텐데 보통의 혁신가까지 참여하셨네요. 참여하기 전에 망설여지진 않았나요? 하고 있는 일도 있고, 프로젝트의 혜택이 큰 것도 아닌데요.

전혀 망설이지 않았어요. 예전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는데, 방법만 몰랐던 상태였어요. 또 보통의 혁신가는 센터가 행정적인 일들을 해결해 줄 수 있잖아요. 저를 위한 판이 깔린 것 같아서 고민도 안 하고 바로 참여했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이유가 뭔가요?

사람이 움직일 수가 있어야죠. 이건 사는 것과도 연관이 되잖아요. 이 문제는 저도 겪었고, 제 친구들은 더 자주 겪었어요. 언젠가 친구들에게 제 경험을 말했더니 친구들이 “버스 올 때 손을 안 흔들어서 못 탄 거야”라는 거예요. 말도 안 돼, 택시 잡는 것도 아니고! 찾아보니 천안의 버스는 이미 지역의 이슈더라고요. 난폭운전으로 유명하기도 하고요. 언젠가 제 아이가 버스 탈것도 생각하니 더 중요한 문제로 다가왔어요. 

 

말씀대로 이미 지역에서 유명한 이슈라서, 나영님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누군가 해결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얼마 전에 천안시에서 영유아와 노약자의 기준을 넓혀 더 많은 사람이 대중교통을 무료로 탈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버스가 이렇게 운행이 되는데, 영유아랑 노약자가 어떻게 타요. 안전하게 탈 수 있게 하는 게 먼저인 것 같은데요. 지역민들의 불만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겉만 번지르르한 것 같은 행정사업만 진행되는 걸 보며 ‘이럴 바에는 내가 하고 만다’라는 생각으로 했어요. 



함께 고민하고, 변화를 이뤄낸 버스닷

참여 전부터 해결하고 싶은 일이 명확했나 봐요. 

네. 참여 시작하자마자 ‘어떻게 하면 내 의제랑 다른 사람의 것을 같이 묶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같이 팀을 이룰 사람을 찾는 것에 집중했죠. 제 의제에 특히 공감하는 사람도 많고, 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수혜 보는 사람들도 많아서 꼭 건드려야 하는 의제라고 생각했거든요.

 

목표가 명확해서 어려움 없이 일이 잘 풀렸을 것 같아요.

팀원을 구하는데 애로사항이 있었어요. 많은 분들이 제 의제에 공감해 주셨지만 기업이나 지자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보신 분들이 계셨어요. 그래서 참여 의사를 선뜻 표현하기 어려워하셨어요. 이 땐 제가 설득력이 없는 것 같아서 속상하기도 했고 제 의제를 포기해야 하나 했지만, 혼자서도 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다고 해서 버스닷을 만들었어요. 팀을 만들고 제 의제에 공감해 주신 희진님이 합류하셨고, 그 뒤로는 다 잘 됐어요. 다양한 의견과 피드백을 적용하다 보니 캠페인 실행 방법이 너무 많아져 무얼 선택할지 고민하느라 어려웠던 건 있어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해서 어렵진 않았어요. 너무 잘 풀렸죠.

 

보통 예상외의 걸림돌이 있기 마련인데 잘 풀렸다고 하시니 다행이에요. 그렇다면 결과도 만족하시나요?

처음부터 성취감을 얻을 수 있길 원했는데, 얻었어요! 하고 싶었던 얘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도 공감을 했고, 성취감도 맛봤고, 만족! 정류장에 표지판을 설치하고 보니 결과물이 예뻐서 참여하길 잘했다 생각했어요. 반대편 차선의 정류장에도 설치됐으면 좋았을 텐데 예산 문제로 설치를 못한 건 아쉽지만요. 반대편 차선만 쓰는 이용객들은 우리 캠페인 내용을 아예 모를 것 같아서요. 그래도 만족해요. 표지판이 언젠가 철거되어도, 버스 기사님께서 한 번이라도 눈길을 주셨으면 된 것 같아요. 

 

캠페인까지 다 끝났잖아요. 보통의 혁신가 전체 과정을 통틀어서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정류장에 표지판 설치할 때가 기억나요. 안타깝고 고생스러웠고, 웃겼어요. 표지판 설치하려고 전동 드라이버 가져갔는데 충전이 안 돼있는 거예요! 겨우 수동 드라이버를 구했는데, 홈 크기가 안 맞아서 설치에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썼어요. 힘 빠져서, 표지판 덜렁거리는 채로 밥 먹으러 가고 그랬네요. 웃겼어요. 

 

프로젝트 마무리까지 3개월이 걸렸어요. 나영님을 결과까지 갈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무엇이었나요?

저는 지차체에서 시민과 함께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그때 기계를 도로에 설치해야 했는데, 도로 관련해서 기관들이 서로 관계자가 아니라고 미루는 일이 있어서 행정 처리하는 데 지친 적이 있거든요. 이런 경험이 있다 보니, 보통의 혁신가 같이 제가 문제를 제기하고 그게 반영되는 모든 과정을 걸림돌 없이 눈에 다 담을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이 모든 과정을 다 보고 싶었었고, 그 마음으로 끝까지 참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나영님이 보시기에, 다른 참가자분들의 원동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진짜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아무도 해결해 주지 않으니 ’내가 해결해야겠다‘는 마음이요. 팀이 되면서 자기 의제를 포기하신 분들은, 상대방의 의제를 듣고 ’저도 그 문제 겪었어요‘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더 커서 참여를 끝까지 하신 것 같아요.

 


또 다른 점을 찍어 선에서 면으로, 혁신의 시작!

보통의 혁신가에서의 경험을 갖고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안 그래도 이미 시작한 게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아산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동아리 ‘카사드’를 만들었어요. 보통의 혁신가를 통해서 캠페인의 전 과정을 배웠으니까, 스스로 도전하며 더 성장하고 싶어서 시작한 활동이에요.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은 관련된 기관에 기부하려고요.

 

활동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예시를 들어볼게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촉감놀이 모래’라는 게 있어요. 이걸 만들려면 밀가루를 사야 하는데, 요새 밀가루가 비싸잖아요. 그럼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슈와 결합해서 제작 연구를 하는 거죠.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로 촉감놀이 모래를 만들어볼 수도 있고요. 이걸 통해서 수익이 나온다면, 이 수익은 아동복지 기관 같은 데에 기부를 하는 거예요.

 

앞으로의 포부가 남다를 것 같아요.

우리 팀 이름 버스닷의 ‘닷’은 점이에요. 점을 계속 찍어서, 선으로 면으로 만들어 언젠가는 진짜 의미의 혁신을 이뤄내고 싶어요. 조력자분들이 해주신 말처럼요.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내가 먼저 하면 다른 사람도 따라 한다!’. 앞으론 진흙 속에 진주를 보는 것처럼, 저를 알아봐 주고 같이 일하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기꺼이 같이 활동하고 싶어요. 자리에 머물지 않고 도전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