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터뷰] 보통만이 만들어내는 힘 - 보통의 혁신가 1기 보통의 동전 팀


세상엔 크고 작은 문제가 있지만, 모두에게 같은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문제도 누군가에게 의미를 가져야 비로소 문제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문제 되지 않는, 집과 차에 당연하게 있는 동전더미에서 고민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 ‘쌓인 채로 외면받는 동전들을 모으면, 새로운 동전을 만드는 데 쓰이는 세금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 고민을 시작으로, 회사원 황한진씨와 논산 전통시장에서 일하는 청년상인 문지희씨는 함께 ‘보통의 동전’팀을 만들어, 흩어진 동전을 모아 사용하도록 권하는 ‘동전 한 컵' 캠페인을 기획하고 실천했다.

 



서로 다른 문제에서 출발해 한 팀이 되다

무엇을 해결하고 싶어서 참여하셨나요?

(황한진) 집이나 차에 쌓여있는 동전들이 세상에서 다시 유통되도록 하고 싶어서 참여했어요. 사람들이 동전을 쌓아두는 바람에 매년 동전 만드는 데 세금이 많이 쓰인대요. 저는 평소에도 회사 제안 시스템에 자주 의견을 내는 편이에요. 보통의 혁신가에서도 저와 비슷한 적극적인 사람들을 만날 거라고 기대해서 참여하게 됐어요

(문지희) ‘주민 대상 사업을 쉽게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신청했어요. 저는 전통시장에서 일하고 지역에서 활동도 하고 있는데요.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걸 봐왔는데, 일반 사람들이 사업들의 홍보 현수막이나 그 내용만 보고는 참여하기 어려운 실정이더라고요.

 

팀 활동하면서 만족하거나 좋았던 부분이 있나요?

(황한진) 생각만 하던 걸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죠. 기획할 땐 키트받을 사람들이 줄을 설 것만 같았는데, 해보니 아니더라고요. 거절도 당하고 그랬죠. 캠페인 취지가 좋아도 결과가 미미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캠페인이란 게 대상 선정부터 장소, 들어가는 내용까지 고려해야 하는게 많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좋은 사람들 덕에 얻는 경험도 많았고요.

(문지희) 우리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풀어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이 과정이 담긴 ‘우리만의 디자인’으로 키트가 나와서 좋았어요. 만족도가 되게 높았어요.

 

아쉬운 부분도 있었나요?

(문지희) 네. ‘동전 한 컵’ 덕에 동전이 잘 모아졌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는데, 충분히 만족할 만큼 되진 않았어요. 이번 저희 활동은 1회성이라 ‘쌓여있는 동전도 사회적 문제일 수 있다‘라는 메시지만 던진 것 같거든요. 동전이 잘 수거되었는지 캠페인 효과를 확인하려면, 반복적인 캠페인을 해야만 가능하잖아요. 우리가 낸 아이디어만큼 캠페인을 다양하게 시도해 보고 문제를 풀지 못해서 아쉬워요. 그래서 후속 활동도 진행해 보고 싶어요.

(황한진) 저는 캠페인 키트를 제 예상대로 만들 수 없어서 아쉬웠어요. 캠페인 할 때 배포할 홍보지를 잘라 조립하면 만들 수 있는, ‘칸막이가 나뉜 동전 정리함’을 구상했어요. 그렇지만 키트에 적용하기에는 시간과 예산에 한계가 있었죠.

 

팀 활동이 마무리됐잖아요. 기억나는 장면이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황한진) 문지희님이 저에게 오실 때가 가장 기억나요. 사실 팀 결성 직전에 의제가 없어질 뻔했어요. 의제의 범주가 비슷한 사람끼리 팀이 되는데, 제 것은 분류가 애매해서 같이 할 사람이 없었어요. 초조하던 참에 최후의 발언 기회가 생겨서, 간절한 마음으로 모두에게 “같이 하실 분! 도와주세요.” 하고 요청했죠. 그때 지희 님이 와주신 거예요.

(문지희) 저는 제 여러 의제들 중에 뭘 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한진 님 발언을 듣자마자 아이디어가 막 떠올랐어요. 제가 일하는 전통시장에서는 동전을 꽤 사용하니까 캠페인을 시장과 연계해도 좋을 것 같았고, 캠페인에 필요한 키트도 생각났어요. 같이 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망설이지 않고 찾아갔죠.

(황한진) 덕분에 힘을 얻고 팀이 됐어요. 지희님 없었으면 저는... 너무 고마운 분이에요.

(문지희) 하하. 저는 캠페인 당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즐거웠어요. 팀원 모두 열정적으로 임해서, 사진작가님이 누구를 찍어야 할지 헷갈려 하실 정도였거든요.

 


커뮤니티/플랫폼의 필요성

팀으로서 공공문제를 해결하는 이번 경험을 통해 두 분께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해요. 우선 비교를 위해서 여쭐게요. 업무 말고,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 단위로 활동하신 적이 있나요?

(황한진) 아파트 입주자 동 대표와 대표회장을 맡으면서 해봤어요.

(문지희) ‘시장이 하나의 교육의 장이 되자’는 취지로 여러 분야에 계신 분들과 시장에서 마을학교를 운영을 했어요. 충청남도의 도민 참여 예산제를 통해 시장 내 문제를 해결한 적도 있고요. 

 

전과 비교해서 보통의 동전 팀을 한 문장이나 단어로 표현한다면요? 그 표현을 고르신 이유도 궁금해요.

(황한진) 모두 적극적이고 협조적인, 무엇이든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팀. ‘팀은 이런 거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좋았거든요. 원래는 ‘팀’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어요. 모인 사람들이 의견이 전부 달라 일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적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혼자 해결해왔어요. 그런데 이 팀은 서로 돕고, 각자 열정도 느껴졌어요. 문제가 생겨도 이 팀원들과 함께라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게 됐달까요.

(문지희) ‘무난’. 절대로 평가 절하는 아니에요. 중간이 가장 어렵잖아요. 무난이라는 뜻 그대로 어려움이 없었어요. 그동안 여러 팀에서 프로젝트나 활동을 해왔지만, 이번 팀만큼 서로를 배려하고 뜻이 맞았던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동전 한 컵’ 활동이 끝나면서, 동시에 보통의 혁신가도 끝났어요. 보통의 혁신가에 참여하기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개인적으로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황한진) 주민 참여 사업을 긍정적으로 보게 됐어요. 지자체 홈페이지에도 수시로 들어가 봐요. 얼마 전엔 지역 신문 이벤트에 아이들과 같이 참여했어요. 아산 시청에 행정 규제 관련 주민 의견 낼 수 있는 제안 사업이 있어서 직접 제출도 했고요. 그리고 같은 주제로 더 큰 캠페인을 기획하고 싶어졌어요.

(문지희) 이번 활동으로 커뮤니티의 필요성을 크게 느껴서, 활동가를 도와줄 수 있는 ‘보통의 혁신가’같은 플랫폼이 지역에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활동가들이 플랫폼을 방문해 도움을 받는, 가령 활동 관련 조언을 얻는다든지, 비슷한 문제를 해결하고픈 사람들끼리 팀을 만들거나, 디자이너랑 같이 캠페인 키트를 제작하거나 하는 식으로요. 보통의 혁신가 시스템을 다른 사람들도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두 분 다 생각이 바뀌셨군요! 그렇다면 이전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것을 새롭게 발견한 것도 있나요?

(문지희) 보통만이 만들어내는 힘을 발견했어요. 일반 시민이라서 일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황한진님이 없었더라면 충남에서 동전과 얽힌 문제를 풀려는 시도는 없었겠죠. 천안의 버스닷팀이 제안한 ‘정류장에 사람이 있어도 버스가 지나가는 문제’는 해결되어야 하지만, 일반 시민이 아니면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을 거예요. 전문가 집단에서 발견하거나 의제로 삼을 만한 일이 아니니까요. 이런 것들을 발견하는 힘은 보통의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 같아요.

 


눈 딱 감고 한 번만 해보세요!

주민이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사업들은 많이 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왜 참여를 잘 안 하는 걸까요? 이미 참여해서 활동하신 분의 입장에서 보면요.

(황한진) 홍보가 문제겠죠. 저희가 이런 캠페인을 진행한 것도 결국 행정 사업 홍보가 잘 안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에서도 동전 순환 캠페인을 했지만, 이 내용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결국 매년 새로운 동전을 찍어 내고요. 그런 점에서 이런 사업들을 많이 알려야 될 것 같아요. 알게 되면 다들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까요? 모르니까 안 하는 거죠.

(문지희) 저도 늘 고민하던 문제인데, 국가적으로 ‘지역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도움이나 교육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해요. 교육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습할 여건이 마련되어 있어야 실천해볼 수 있을 텐데요. 물론 한진 님 말씀처럼 홍보도 중요하고요.

 

독자들 중엔, 두 분께서 짚어주신 한계를 극복하고 ‘나도 한번 해볼까’하고 고민하는 분이 계실 것 같아요. 그분들께 한 마디 해줄 수 있다면?

(문지희) 하하하. ‘딱 한 번만 해보세요’. 관심 가졌다는 건 이미 반은 왔다는 거예요.

(황한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작은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해결이 될 수도 있잖아요.

 

‘개인이 혼자 노력해 봤자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부질없다.’라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그 분들께는요?

(문지희) “그래도 제가 해보니까 저와 제 주변은 바뀌었어요. 한번 해보세요” 이렇게 답하고 싶어요. ‘얼마나 바뀌겠어?’라고들 하지만, 그만큼은 바뀌고 변화하더라고요.

(황한진) 전 아까 대답과 같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해 볼 수 있다면 해보는 게 좋고, 적극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전 다른 데서도 이렇게 말하고 다녀요. 좀 잔소리꾼?(웃음)

 

참가자들은 전부 다른 의제를 가져왔지만, 결국 팀을 만들고 문제를 만나도 이탈하지 않고 결과를 냈어요. 무엇이 모두를 결과까지 가도록 만든 걸까요?

(문지희) ‘계속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 때문에 끝까지 갈 수 있던 것 같아요. 왜냐면, 저도 제가 냈던 의견이 원점으로 돌아가자 순간 의욕이 떨어진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도 주변에서 끊임없는 질문으로 방향을 잡아주셔서 계속 고민하게 됐어요. 이탈할 생각도 못 할 정도로요. 그러다 보니 결과를 만들어 내게까지 된 거에요.

(황한진) ‘팀이 됐으니 결과를 내야 한다는 책임감과 긴박감’ 때문 같아요. 제가 딱 그랬거든요. 저는 보통의 혁신가에 지원할 때부터 큰 단위의 캠페인을 상상했었는데, 이게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실천 가능한 캠페인’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바꾸느라 쫓기는 듯했죠. 그래도 결과를 내야 하니깐,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결과를 냈거든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보통의 혁신가가 끝난 지금, 두 분께 ‘혁신’이란 무엇인가요?

(황한진) 전에는 혼자서만 문제 해결을 했으니까... 지금 제게 혁신이란 ‘개인이 아닌 팀으로도 가능한 것‘ 그리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까지 하는 것’입니다.

(문지희)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요.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한다는 혁신의 사전적인 뜻에 비하면, 우리의 도전은 혁신이라고 할 수 없겠죠. 그래도 언젠가 여기서의 참여들이 작은 변화를 만들고 참가자분들 중 한 명이라도 지역 활동가가 된다면, 그때 우리의 행동을 혁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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