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터뷰]애매한 세탁소 옷걸이, 다시 돌려주세요. - 보통의 혁신가 2기 멋진지구인팀

멋진 지구인이 될 거야!

 

병든 지구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 해 보곤 합니다.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을 땐 주변의 특정 공간을 정해두고 그 안에서 다시 쓸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봅시다. 먼저 방 안의 옷장을 열어볼까요? 무엇이 보이나요? 사놓고 입지 않은 옷, 구멍 난 채 다 낡아버린 양말, 아! 그리고 쓰지 않는 옷걸이들도 보입니다. 세탁소에 옷을 맡길 때마다 늘 따라오는, 하얀 PVC로 코팅이 된 얇은 철제 옷걸이입니다. 돌려주지 않지만 잘 쓰지도 않는, 재활용도 애매한 세탁소 옷걸이. 한국에서만 한 해에 2억 개씩 소비되는 옷걸이 중 상당수가 옷장 속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멋진지구인’팀은 이런 옷걸이들이 새로운 옷을 걸치도록, ‘세탁소 옷걸이 다시 쓰기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누군가가 이 메시지를 읽고 옷걸이를 세탁소로 돌려준다면 지구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실천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환경교육을 하는 환경교육사로 활동하고 계시죠? 이번에 기획하고 실행한 프로젝트도 버려지는 옷걸이 재사용에 관한 캠페인이었고요, 환경 이슈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된 건지 궁금해요.

생협을 이용하면서 유기농 식품이나 공정무역, 제로웨이스트에 관한 걸 알게 되어서 실천하고 있었어요. 그보다 더 관심을 갖게 된 건 우리 지역의 환경교육센터에서 진행하는 환경 강사 양성 과정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탄소중립이나 기후 위기라는 말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 과정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개인의 실천 수준에서 머무르면 안 될 것 같다. 더 나아가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함께할 건 함께하고 연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작년부터 달려온 거 같아요. 환경교육사 자격을 따서 학생들 만나며 교육도 하고요. 보통의 혁신가 같은 다양한 활동도 하게 되었어요. 제가 두 아이의 엄마예요. 10년 정도 경력이 단절된 채 살았거든요. 돈을 많이 벌 거나 일이 많거나 하지는 않지만, 사회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2022년이 제게 의미가 많은 한 해가 되었어요.

하고 계시는 다양한 활동들은 어떤 일들인가요?

작은 소모임들을 운영했었어요. <멋진 지구인이 될 거야>라는 책이 있어요. 만화책이에요. 그 책을 읽는데, ‘나도 이거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딱 드는 거예요. 작가가 직접 제로웨이스트 같은 실천을 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노하우를 만화로 그린 거거든요. 혼자 하기보다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모임을 만들어서 플로깅도 하고 천연수세미도 뜨고 화장지 대신 쓸 수 있는 소창 다회용 티슈를 만들기도 했어요. 지금은 모임은 끝났지만, 소모임 멤버들과 함께 내포문화숲길 소속 환경캠페인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혁신가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모집하는 글을 읽어봤어요. 평소에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들이 있었으니 이거 한번 써 봐도 되겠다, 해서 그냥 썼어요. 그냥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마침 지원해 주는 프로젝트가 있으니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잘 모르고 가볍게 지원했어요. 또 제가 환경 강사로 아이들 앞에서 수업할 때 느끼는 게 있어요. 완벽해야만 교육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실천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서 내 삶 안에서 어느 정도는 노력하고 있어야 가르칠 때도 진정성 있게 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으로만 공부한 게 아니라 직접 지역사회에서 실천했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보통의 혁신가에 신청서를 냈어요.

 

최선을 위한 고민들

신청서에 옷걸이 재사용 문제를 적으셨던 건가요?

처음에는 다른 의제를 적었어요. 동네에 마트가 있거든요. 거기 로컬푸드 코너가 따로 있어요. 가까운 거리에서 오는 생산물인데 스티로폼이나 플라스틱 포장이 너무 과해서 불편한 거예요. 깨끗한 포장재들이 계속 버려지는 게 아까우니까 그 이슈를 적었죠. 그런데 이걸 재사용하는 제도를 만드는 건 단시간 안에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려운 것보다는 가능성이 높은, 쉬운 것부터 시작해 보려고 천연 수세미 이용을 권장하는 캠페인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보통의 대화가 총 세 번 있었거든요. 두 번까지는 계속 수세미 이야기를 했어요. 두 번째 날이 끝나고 세 번째 보통의 대화까지 2주 정도의 기간이 있었어요. 그 사이에 제가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 찾을 때 번뜩 머리에 스친 아이디어가 옷걸이 재사용 문제였어요. 항상 옷걸이 받을 때마다 ‘이거 버리는 사람들 정말 많고 나도 필요 없는데.’ 하는 생각을 해왔거든요. 세탁소에 너무 오랜만에 들른 거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문제였어요. 그래서 세 번째 보통의 대화에서 의제를 바꾸게 되었어요. 세탁소 옷걸이가 영구적으로 재사용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한 번 쓸 걸 두 번, 세 번만 사용해도 어쨌든 그만큼 생산되는 옷걸이 개수는 줄어드니까 재사용을 한 번이라도 더 하는 걸 목표로 캠페인을 해보자고 제안했죠.

'환경'이라는 결은 같지만, 드라마틱한 변화였네요. 실제로 캠페인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우선 옷걸이를 수거해 줄 세탁소를 섭외했어요. 체인점은 뺐어요. 체인점은 체계가 복잡해서 수거를 안 하더라고요. 내포에 있는 세탁소 네 군데를 다 돌았어요. 사장님께 저를 내포에 사는 시민이라고 소개하고, 옷걸이는 필요 없는 사람도 많고 재활용도 사실 잘 안되고 하니 멀쩡한 거 다시 돌려드리면 쓰실 수 있겠냐고 물어봤어요. 사실은 네 군데 다 이미 옷걸이를 받고 계셨더라고요. 다만 돌려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거예요. 환경에도 좋고 가게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것만 알면 다른 사람들도 쉽게 동참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네 군데 중 세 군데에서 캠페인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어떤 디자인이 나왔나요?

캠페인의 내용을 알리는 포스터를 만들어 부착했어요. 그리고 참여하는 가게 사장님들의 명함도 만들어 드렸어요. 앞면은 명함이고 뒷면은 ‘옷걸이 다시쓰기’라고 적힌 캠페인 내용을 적고요. 옷걸이를 재사용하는 착한 가게라는 문 앞의 인증마크도 붙여드렸어요. 그리고 옷걸이 고리에 달 수 있는 사이즈링도 만들었어요. 거기 ‘다시쓰기’라고 적혀 있거든요. 사실, 사이즈링 제작할 때는 의견이 분분했어요. 사이즈링도 버려질 테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거든요. 크기도 작기 때문에 선별장에서 선별이 안 돼요. 재활용 이 안 되는 거죠. 대체할 여러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세탁소 사장님도 번거롭지 않은 일이 되어야 캠페인이 계속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결국엔 사이즈링으로 결정되었어요. 사이즈링은 저희가 다 끼우는 작업을 마쳐서 드렸어요. 편의성 때문에 선택한 것도 있어요. 최선은 했는데, 최고의 선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안전하게 내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팀으로 활동한 건 어떠셨어요?

조력자와 디자이너 선생님 도움을 많이 받았죠. 모두가 같이 해낸 일이에요. 혁신가가 낸 아이디어를 존중해 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정말 감사했어요. 또 제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될 때는 조력자님이 결정하는 데 도움을 많이 주셨죠. 주시는 의견들이 신뢰가 되었어요. 의견들의 방향을 잡아주고, 길을 잃을 때 다독이는 역할까지 해야 하니 조력자의 역할이 어려우셨겠다 싶어요. 저는 같이해서 참 좋았어요. 저 혼자 생각만 하고 있으면 실현되기가 굉장히 어려웠을 거예요. 그런데 해보라고 멍석 깔아주고 물적으로도 인적으로도 지원해 준 거니까요. 정말 좋은 기회였죠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다 기억에 남아요. 저는 보통의 대화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어디서 환경 이야기를 하면 화제가 잘 안 돼요. 그런데 여기서는 모두가 제 얘기를 잘 들어주시고 공감해 주시니까 너무 신나는 거예요. 평소에는 그럴 일이 별로 없으니까요. 세 시간씩 세 번 진행했는데 시간이 금방 가더라고요. 세 번째 시간에는 남편이 주말 근무를 하는 날이어서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으니,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도 했어요. 그래도 똑같았어요. 대화하는 분위기니까 아이들이 다소 소란스러워도 묻혀가더라고요. 분위기가 진짜 좋았어요. 다른 분 들도 맘껏 이야기하시고 또 주의 깊게 들어주고. 그 분위기가 가장 핵심이 아니었나 싶어요.

보통의 대화가 안전하게 내 삶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던 거네요.

맞아요. 거기다 그런 과정에서 제 아이디어가 여러 번 변화했듯이 다른 혁신가들의 의제가 변화하는 걸 보는 것도 의미가 있었어요. 바꿔도 된다고 생각하니 좋더라고요. 처음에 이야기했던 걸 끝까지 해야 한다고 하면 부담이 엄청나잖아요. 보통은 처음에 기획한 대로, 내가 말을 뱉은 대로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좀 달랐어요. 의제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는 그 말이 마음을 가볍게 해줬어요.


보통의 혁신가는 보통의 실천가라는 말

보통의 혁신가에 참여하며 새롭게 깨달은 사실이나 배운 점 이 있나요?

젤리장의 강연에서 ‘보통의 혁신가는 보통의 실천가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생각으로만 머물러 있으면 혁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 같은데 그 말이 지금도 좋아요. 그 힘을 거기서 알았죠. 현수막 붙이고 ‘하자, 하자.’ 해도 안 하잖아요. 간단한 미디어 하나로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실천하게 만드는 힘. 저도 그런 것들을 앞으로 계속해 나가고 싶어요. 근데 혼자서는 절대로 못 하고요. 더 많은 사람이 캠페인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지원이 필요해요. 생업이 있는 사람들이 내 시간과 노동을 투입하는 일인데 혼자 하라고 하면 못하죠. 정말 큰 사명감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요. 이런 게 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간혹 비슷한 공모사업들이 나오긴 하지만, 거창하거든요. 기획도 회계도 다 지원자가 알아서 해야 하니까요. 엄두가 안 나죠. 그런데 보통의 혁신가는 받쳐주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저는 정말 또 하고 싶어요.

'보통의 혁신가는 보통의 실천가다',라는 말이 많은 걸 함축하고 있는 것 같네요. 일상에서 보통의 실천을 펼쳐나갈 혁신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이전에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우리가 작은 거 하나 한다고 바뀌는 게 있나? 큰 변화로 뭔가를 해내야지, 작은 것들로는 바뀌는 게 불가능하지 않나? 그렇지만 지금은 달라요. 작은 그 한 걸음. 개인의 작은 실천이 정말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해요. 결론적으로는 시스템 바꾸는 게 제일 중요하기는 한데, 시스템도 그냥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작은 변화가 모이고 모여서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그 처음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요.

그 처음을 만들고 계시는 중이신 거 같네요.

뭔가 (웃음) 잘 모르겠기도 해요. 이걸 발판 삼아서 또 다른 걸 해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보통의 혁신가 사례를 보고 도전해 볼 수도 있으니, 제가 실행한 프로젝트의 성과가 좋았으면 하는 마음은 있어요. 그렇지만 프로젝트의 결과나 확산은 제 소관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제 할 일은 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어요. 마음이 편해요. 가볍고 부담 없이 할 수 있었던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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