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터뷰] 쓸데없어요? 무용지용의 세계! - 보통의 혁신가 1기 김서윤 님


서윤 씨는 보통의 혁신가에서 유일하게 청소년 이슈에 불을 붙인 당사자다. 부당한 처우를 받고 일하는 청소년 노동자의 권리를 높이기 위한 활동을 펼쳤다. 서윤 씨는 ‘찔러보기 대장’ ‘쓸데없는 짓 대장’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만큼 하는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쓸데없는 짓’이라고는 했지만, 내가 보기에 서윤 씨가 조금씩 건드리며 바꿔 나가는 판은 무용지물이 아닌 무용지용의 세계. 그가 만들어가는 무용지용의 세상을 들여다보자.


 내가 겪어 보았기 때문에

보통의 혁신가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제가 약간 쓸데없는 짓 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웃음) 쓸 데 없는 짓 대장, 여기저기 찔러보기 대장이에요. 홍보물을 보고 재미있어 보여서 여기도 찔러보게 됐습니다.

 

보통의 혁신가에서 청소년 관련 문제를 제안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보통은 미성년자를 청소년이라고 생각하죠.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만 13세부터 24세까지를 청소년으로 규정하고 있어요. 제가 만나이로 스물두 살이에요. 그래서 이런 의미로 보면 아직 청소년이거든요. 미성년자였던 시기를 지나 온 지도 얼마 안 됐고요. 제가 청소년으로서 실제로 겪은 문제들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었어요.

 

공론장이었던 ‘보통의 대화’를 거치면서 주제가 변화무쌍하게 변했더라고요. 주제를 정하는 게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제가 가장 처음 제시한 문제는 청소년이 자유롭게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거였어요. 금전적 여유가 부족한 청소년이 건전하고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거든요. 천안에 청소년 카페가 몇 곳 있긴 하지만, 아는 사람도 없거니와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어요. 저한테는 정말 절실했는데 청소년 의제에 관심 있는 분이 없더라고요. 그나마 미취학 아동을 자녀로 둔 분과 한팀이 되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접점이 잘 생기지도 않았고요.

 

전혀 다른 주제를 가진 두 분이 만나서 팀을 이루었네요. 의견 조율은 어떻게 하셨어요?

그분은 대형마트 쇼핑카트에 아이를 앉히는 게 위험하다는, 안전에 관한 문제를 제안했어요.

저희 둘의 관심사를 맞추려고 대형마트에서 다양한 가족의 형태, 이를테면 학교 밖 청소년, 한 부모 가정, 조손가정 등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캠페인을 기획했어요. 서로 다른 두 의제가 합쳐져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온 거예요. 이 흐름이 신기했고 기억에 많이 남아요.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싶었죠. 그런데 아쉽게도 이야기가 계속 이리저리 튀고, 진행도 지지부진했어요. 뾰족한 수도 떠오르지 않았고요. 그러다가 제가 청소년 노동권리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어요.

 

처음 제안했던 주제가 바뀐 게 아쉽지는 않으셨나요?

아쉬웠죠. 청소년 공간이 부족한 것도 청소년의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도 둘 다 제가 겪은 일이고 중요하지만, 저는 전자가 더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지만 시설을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팀원 분들도 청소년 노동권 주제에 더 힘을 실어주셔서 이 주제로 결정을 했어요.


 

사장님도, 청소년도 서로 당당해지는 청소년 노동권 캠페인

직접 겪어본 일이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청소년 노동권을 떠올리셨어요?

제가 알바를 굉장히 많이 했었거든요.

 

어떤 알바를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알바도 여기저기 많이 찔러봤죠. 진짜 많이 했어요. (웃음) 고깃집, 치킨집, 스시집, 공장, 편의점, 유통사. 실험실 쥐 우리 청소하는 것도 해보고요. 지금은 야구장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어요.

 

알바를 그렇게 많이 해야 했던 이유가 있나요?

제가 취미로 관현악단을 하거든요. 악기를 사고 싶었는데 용돈이 부족해서 알바를 시작했었고요. 또 교환학생을 가고 싶었어요. 이것도 저의 쓸 데 없는 짓 중 하나였죠. 교환학생 가는 걸 부모님이 굉장히 반대하셨거든요. 그런데도 너무 가고 싶어서 혼자 열심히 돈 모아서 어느 날 편지 하나 남겨놓고 떠났어요. (웃음)

 

부모님 입장에서는 날벼락이었겠네요. (웃음) 전혀 쓸 데 없는 일로 보이지 않아요.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청소년 노동 권리가 최종 주제가 되었는데, 알바 할 때 어떤 일이 있었나요?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일한 적이 많았거든요. 주휴수당 같은 건 받은 적도 없어요. 최저 시급조차 못 받은 적도 있고요. 그래서 청소년 노동권리에 관한 주제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표준 근로계약서가 담긴 키트를 고용주와 청소년 당사자에게 전달하는 게 주요한 기획이었습니다. 이름은 ‘당당 캠페인’이었어요. ‘오늘도 당당하게 지킬 줄 아는 당신을 위해’라고 쓰인 봉투 속에 근로계약서와 착한 사장님임을 인증하는 스티커 팩이 들어있어요. 왜, 우리 음식점 가보면 종종 보잖아요. ‘위생상태 매우 우수’하고 별 세 개 그려진 명패 같은 거요. 그런 거랑 비슷한 거예요. 고용주도 고용된 청소년도 스스로 청소년 노동권을 지키고 있다는 인증을 할 수 있도록 키트를 구성했어요.

 

배포는 어디서 어떻게 하셨어요?

두정동 먹자골목에서 배포했어요. 배포할 때는 많이 아쉬웠어요. 이미 근로계약서 양식을 가지고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나 편의점은 제외. 술집은 미성년자들을 법적으로 고용할 수 없으니 제외. 그래서 작은 개인 카페 위주로 배포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제외한 곳이 알바생을 더 많이 쓰거든요. 실제로 제가 알바하면서 가장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곳도 편의점이었어요. 술집 같은 곳도 불법적으로 청소년들을 알바생으로 쓸 테니까 더 암암리에 더 부당한 대우를 할 것 같은데, 거기도 가볼 수 없었으니까요. 실제로는 효용성이 떨어질 것 같았어요.


 



발이라도 담가보세요! 변화는 그렇게 옵니다.

아쉬운 점을 많이 이야기해주셨는데, 현장에서 활동을 마무리한 뒤엔 어떤 기분이었나요? 또 아쉬움만 남았나요? (웃음)

요즘 유행어 중에 ‘내가 해냄’이라는 말 아시죠? 일 벌이기는 좋아하지만, 뒷심이 없는 제가 일단 뭔가 해냈으니까요. 시원한 느낌이 들었어요. 하지만 아쉽고, 아쉬우며, 아쉬웠습니다. (웃음) 근로계약서를 배포하는 것 말고도 아이디어가 되게 많았는데, 그걸 다 실행하지 못한 데서 온 아쉬움도 있었어요. 또 배포할 때는 우리가 만든 이 키트를 보시곤 거부감을 느끼는 상점도 있어서 그게 마음에 많이 남아요.

제가 간호학과에 재학 중이거든요. ‘공공’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에요. 그런데도 처음에는 ‘공공, 좋긴 하지. 하지만 사회혁신은 조금 어려울지도?’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사회혁신이 어렵기만 한 걸로 생각되지 않아요. 가벼운 마음으로 발이라도 살짝 담가보라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통의 혁신가를 추천하고 싶어요.

 

발이라도 담가보라는 말이 부담 없고 좋네요.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은 가볍게라도 시도하고 행동하길 주저하는 걸까요?

아까도 말했듯이 ‘쓸데없는 짓’이니까요. 엄마가 오늘도 저 보면서 “또 쓸데없는 짓 하러 가니?” 이러셨거든요. (웃음) 자격증이나 토익같이 어디서 통상적으로 인정해주는 스펙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사람들은 늘 바쁘니까 여유가 없잖아요. 삶에 치여서 시도를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3개월 안에 끝나는 단기 프로젝트이기도 하고, 디자이너와 조력자분들이 도와주기도 했고요. 거기다 지원금도 있으니까 이런 게 합쳐져서 용기가 생겼던 거지 혼자서 하라고 했으면 저도 쉽게 시도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런 시도들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저는 쓸데없는 짓 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서 ‘일이 힘들고 지칠 때 하면 재밌어요!’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무엇보다 사람들을 움직이기 가장 쉬운 것은 보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보상만 있다고 다 하는 건 아니에요. 보상보다 귀찮음이 더 크면 안 해요. 제 취미가 포켓몬고예요. (웃음) 그 게임에서 포켓스탑이라는 게 있어요. 길을 걷다가 포켓스탑을 발견하면 거기서 멈춰 서서 360도 촬영하는 미션이 있는데, 아이템을 준다고 해도 그 미션이 나오면 삭제하고 잘 안 하거든요. 귀찮으니까요. 하지만 더 큰 보상이 있다면 어떨까요? 지금은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며 시민의식을 발전시킨다는 측면에서 자기만족 정도를 얻어 가는 건데, 저는 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됐든 금전적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편집자 주_지금은 활동비 40만원이 지급된다.) 너무 속물 같은 말을 하는 게 아닌가 걱정되는데요. 현실적으로 예산 마련도 쉽지는 않을 거고.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요.

 

더불어 ‘개인이 뭘 해서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겠느냐’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흔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모든 변화는 한 발짝에서 시작하지 않나요? 저는 환경에 관심이 많아서 요즘엔 ‘용기내 프로젝트’를 진짜 용기 내서 하고 있어요. 혼자서 하면 유난이라고 할까 봐 솔직히 조금 두려웠는데, 생각보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진짜 용기가 나더라고요. 이렇게 조금씩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 캠페인처럼, 관심 가지는 사람이 늘어나면 실제로 캠페인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덩달아 늘어나게 될 거고 그렇게 되면 세상도 조금씩 변화해 갈 거라고 믿어요.

 

보통의 혁신가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떤 말로 이야기하고 싶으세요?

‘새로운 아이디어’와 ‘교류’라고 생각해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로 정보를 접하게 되는 곳이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잖아요. 그래서 자기가 관심 있고, 보고 싶어 하는 것만 알고리즘을 통해 보게 돼요. 알고리즘 때문에 새로운 것을 볼 기회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는데, 보통의 혁신가를 통해 제가 관심 가지지 못했던 많은 이슈에 대해서 알게 됐죠. 또 보통의 혁신가에 희망과 의지를 지니신 분들이 많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그 분들과도 팀을 이뤄서 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기 위해 계속 실천하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자세를 본 게 감동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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