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터뷰] 우유팩 분리수거, 재미있고 슬기롭게 - 보통의 혁신가 2기 슬기로운분리수거생활 팀


작은 실천으로 지구를 지킬 수 있다는 걸



매일 학교에서 많은 양의 우유팩이 버려진다는 것을 알게 된 슬기로운분리수거생활팀은 아이들이 올바른 우유팩 분리배출 방법을 알 수 있도록 캠페인을 기획했습니다. 앞으로 우유팩의 분리수거를 담당할 우유 반장을 뽑고, 함께 우유팩을 이용해 딱지를 접고 놀면서 분리배출 방법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이 캠페인을 통해 우유팩을 올바르게 버릴 줄 알게 된 아이들은 환경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랄 겁니다. 그 기회를 선물한 슬기로운 분리수거 생활팀의 도전, 작지만 강력한 혁신입니다. (슬기로운분리수거생활팀 조력자 이정운, 디자이너 이우상, 참여자 주남경)



우리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

송악마을에 와보니 재미있는 공간과 오랜 역사가 있는 곳 같네요. 송악마을은 어떤 곳인가요?

이정운  송악마을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데엔 학교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마을 안에 초등학교 두 개, 중학교가 하나 있어요. 1995년에 송악면에 어린이와 청소년 인구가 줄면서 폐교 위기에 놓여버린 거죠. 그때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이라는 게 확산했어요. 2002년에는 근교에 살던 뜻 맞는 학부모들이 합심해서 송악으로 전입했고요. 자연 속에서 배워야 한다는 뜻을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생태교육이나 대안교육에 관심을 둔 선생님들을 모셔서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죠.

그런 학교에서 배우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딘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우유팩 분리 배출에 관한 캠페인을 떠올리신 것도 그 일환일까요?

주남경  제가 그 학교 중 하나인 거산초등학교에서 돌봄교사로 9년째 일하고 있어요. 학교가 시골에 있기 때문에 비교적 생태적인 공간이긴 하지만, 학교 안에서의 생활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생태적으로 생활하는 방법을 습관화시키고 가르쳐줘야 하는데, 학교 안에서 그게 실천이 안 되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계속해서 뭔가를 사고 버리는 이런 사회의 구조 속에서 자원이 순환되지 않고 버려지기만 하는 게 불편했어요. 특히 학교에서 마시고 버려지는 우유팩이요. 충분히 재활용이 가능한데 그냥 버려지잖아요. 우리 학교뿐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송악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우유팩은 분리배출하는 방법이 일반 종이와 다른가요?

주남경  특수처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 종이와는 달라요. 깨끗이 씻어서 말린 뒤에 특정 수거처에 배출해야 해요. 그런데 그동안은 대부분 씻지 않고 종이쓰레기로 배출되었던 거죠. 그렇게 지자체에서 수거된 우유팩은 선별장에서 결국 자원으로 재활용되지 못하고 소각되어버려요. 제가 돌보는 반에서는 담임선생님과 상의해서 깨끗이 씻은 우유팩을 생협에 갖다줘서 휴지로 바꿔오는 활동을 했었어요. 생협에서 우유팩을 수거하거든요. 이렇게 제가 있는 반에서 조금씩 하는 건 되는데, 다른 학년이나 다른 반에서는 이게 하나도 안 되는 거예요. 가정에서도 우유팩이 꽤 나올 텐데 왜 아무도 고민하거나 실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보통의 혁신가에 제안하게 되었어요.



서로 지향하는 가치가 같았던 구성원들의 협력

팀이 결성되어 이 의제가 캠페인으로 발전한 과정이 궁금한데요. 조력자이신 정운 씨도 송악의 주민이시라고요?

이정운  네. 저도 아이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가까이에서 같이 활동하면 좋겠다고 해서 한 팀이 되었죠. 이 학교와 송악을 잘 알고 있고 선생님들과도 관계가 있다 보니 어렵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는 공공기관이고 다소 폐쇄적이잖아요. 그런데우리 마을의 학교들은 주민들에게 열려 있고 교장 선생님과 다른교사분들도 이런 가치에 동참해주실 거라고 믿었어요. 실제로 학교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런 열린 마음과 도움 덕분에 수월했어요. 우리 팀도 학교도 서로 제안해 가면서 아이들하고 재미있게 만날 수 있었죠.

슬분생 팀 내에 혁신가가 한 분 더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주남경  오늘 개인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하셨어요. 최혜정 씨는 처음에는 저와는 다른 주제를 갖고 계셨어요. 케이크 전문점을 하시는데, 포장재를 줄이기 위해서 손님들이 용기를 직접 가지고 올 수 있도록 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 하셨어요. 서로 추구하는 가치가 같다고 생각했죠. 제 이야기를 들으시고 같은 그룹으로 프로젝트를 준비하게 되었어요. 

디자이너인 우상 씨는 어떻게 함께하게 되었나요?

이우상  디자이너도 신청서를 쓰거든요. 관심 있는 사회문제에 대해서 쓰는 란이 있어요. 제가 분리배출에 관심이 있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하고 접근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실상을 알고 나니 참담했죠. 우유팩을 비롯해 많은 자원이 이 정도로 재활용이 안 되고 있다는 건 몰랐거든요. 자라나는 아이들부터 이런 것들을 실천해나가는 문화를 만든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지 않을까 했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는 오히려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분리배출이나 환경 이슈에 관한 의식과 관심을 더 많이 두고 있는데 정보전달이 안되거나 주변 상황이 여의찮아서 실천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이들이 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그런 환경을 만드는 걸 도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슬분생에 함께하게 되었어요.

세 분 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해주셨는데요. 어떻게 이런 사회 이슈에 관심을 두게 되었나요? 어떻게 보통의 혁신가까지 흘러오신 건지 궁금해요.

이우상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로컬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꿈이 있어요. 일상 속의 사소한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 주변 사람들이 좀 편안하고 윤택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게 많잖아요.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고 작은 길고양이를 돌보는 일 같이 돈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있어요. 시민의식과 가치관이 높아질 때 그런 게 해결되고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걸 많이 느꼈거든요. 이걸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작업이 재미있어요.

이정운  저는 아이쿱에서 10년 정도 활동가로 움직여왔어요. 사실 저도 돈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왜 돈도 안 되는 일을 10년이나 하고 있나 싶네요.(웃음) 그런데 이런 일들이 재미있고 제가 가진 소질이 이런 곳에 반영되는 걸 보는 게 좋아요. 배우고 성장하는 느낌을 받거든요. 활동을 꾸준히 하다 보니 주변에서 조력자를 해보겠냐는 제안과 추천을 받게 되었고요. 하는 김에 언니(주남경)가 이런 거에 관심도 많고 해서 제가 또 혁신가로 들어와 보지 않겠냐고 언니에게 제안했죠.

주남경  마감 두 시간 전에 신청서를 막 써서 냈던 것 같아요. 얼떨결에 했죠.(웃음) 저는 환경보건학을 전공하기도 했고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에게 아토피가 있었어요. 제가 아토피가 있는 아이를 낳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밀가루 음식이나몸에 안 좋다는 걸 다 끊고 건강하게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왜 아이에게 아토피가 생겼을까 생각해보니 제가 노력하는 것만으로는부족하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워낙 안 좋은 환경에 노출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그때부터 환경과 생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에 활동가분들이 많아서 영향을 받기도 했고요.




또 다른 혁신가, 우유반장

교사가 분리 배출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돕는 게 이 캠페인의 기본 골자였나요?

주남경  아니요. 교사가 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한 사람이 나서서 혼자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우유를 마신 사람이 스스로 실천해야 할 문제라고 접근했어요. 학교라는 장소에서 무엇이 불편해서 실천이 안 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려고 했어요. 아이들에게도 이 실천을 왜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려주고요. 우유팩을 만드는 재료가 최고급 펄프예요. 북남미 등지의 30년 이상 된 나무를 베서 펄프를 만들거든요. 대한민국은 펄프가 없어서 100% 수입하고 있는 상황인데 아이들이 이런 심각성을 모르잖아요. 그리고 그 우유팩을 재활용하면 거기서 얻은 펄프로 다시 재생 휴지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죠. 나의 작은 실천이 지구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인지시키려고 했죠. 그래서 쉽고 편하게 실천할 수 있는 여러 방법과 도구를 고민했어요.

그래서 어떤 디자인물이 나왔나요?

이우상  우유반장이라는 직책을 만들고 우유반장을 맡은 아이에게 이행할 수 있는 키트를 제공해줬죠. 아이들이다 보니 우유팩 모양의 귀여운 캐릭터를 하나 만들었어요. 그 캐릭터를 이곳저곳에 활용했죠. 포스터랑 가방, 뱃지 같은 게 있었네요.

우유반장이라는 말이 귀엽네요. 캠페인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주남경  송악에 있는 세 학교 중 우유급식을 하는 두 학교를 타깃으로 삼았어요. 분리배출 활동을 할 수 있는 도구를 모아 담아줄 수 있도록 에코백을 만들었어요. 우유 반장이라는 리더를 만들고 표시하는 배지를 만들었어요. 제일 처음 이 우유반장을 모집하기 위해서 포스터를 제작하고 피켓과 깃발도 만들었어요.

우유반장은 많이 모집되었나요?

주남경  아이들이 QR코드로 접속해서 신청하는 방식을 선택했는데요. 중학교는 우유 마시는 아이들이 워낙 적어서 그런지 4명이 신청했어요. 생각보다 저조해서 후회되기도 했어요. 모집 홍보 행사를 하는 날 그 자리에서 신청받을 걸, 하고요. 행사할 때는 관심 있는 아이들이 꽤 많아 보였거든요.

초등학교에서는 반응이 어땠나요?

주남경  반응이 좋았어요. 날이 추워질 즈음에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손에 물이 묻어 있으면 불편하니까 손 닦을 용도로 수건을 주고 제작한 키트 외에도 핸드 로션을 따로 줬어요. 수고해줬으니까 고마운 마음에 선물을 한 거죠. 이름 스티커도 만들고요. 마스크에도 우유반장 스티커를 붙여주었는데 반응이 너무 좋더라고요. 중학생 아이들은 창피하다고 안 하고 다니는데, 초등학교 아이들은 좋아하는 거예요. 우유반장에게 임명장을 주기도 했어요. 우유팩 분리배출에 기여했다고 상장도 주고, 이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도와준 선생님들께도 감사장을 드렸어요.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뭔가 보이는 동기부여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캠페인을 진행하며 팀 내에서 이견 조율은 어떻게 하셨나요?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이정운  디자이너님이 어려우셨을 거예요. 포스터 한 장 만드는 데도 고민을 많이 하시고 신경을 엄청나게 기울여야 하는데, 우리가 하다 보면 이렇게도 해보고 싶고 저렇게도 해보고 싶고 욕심이막 생기잖아요. 우리가 가진 시간은 또 한정적이고. 또 저희는 디자이너님이 어느 정도의 공력을 들여야 이런 결과물이 나오는지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수정 요청을 많이 드리게 되었죠.

이우상   다 괜찮았어요. 다만 양이 좀 많았죠.(다 같이 웃음)

주남경   디자인물의 종류가 정말 다양해서... 우리 디자이너님 별명이 뚝딱이거든요. 그래서 뚝딱 나오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웃음)



 ‘나’에서 ‘함께’로. 꾸준한 혁신으로 가는 길

‘보통의 혁신가 하길 잘했다.’ 하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재미있다는 말을 여러 번 해주시긴 하셨는데요.

이우상  초등학교에서 프로젝트 할 때 정말 뿌듯했죠. 아이들이 신나 하고 관심도 많고요. 저희가 이벤트 하면서 퀴즈도 풀게 하고 우유팩 딱지치기 같은 놀이 프로그램을 만들었거든요. 그걸 정말 즐겁게 하는 모습을 보니 좋더라고요. 디자이너로서도 배운 점이 많았어요. 이전에는 인쇄소랑 일하고 끝인 경우가 많았거든요.그런데 이번에는 여러 지역에 있는 단체들과 협업해야 했고 전체적으로 기획하고 후속 관리하는 부분까지 현실적으로 알게 된 계기가 됐어요.

이정운  협력하니까 더 편안하고 재미있게 할 수 있었어요. 조력자로서의 제 역할, 디자이너의 역할, 혁신가의 역할 다 나누어서 하다 보니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죠. 긴 시간 캠페인을 하다보면 힘들고 지쳐서 이다음에는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데 짧은 시간 안에 실천과 행동을 했던 게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무겁지 않아서 좋았어요.

주남경  저는 이 의제에 관해서 굉장히 오랫동안 생각만 해왔어요. 보통의 혁신가가 없었다면 실행해보지 못했겠죠. 디자이너와 조력자가 함께 하며 캠페인을 만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서 가능했던 거예요. 또 다른 혁신가들이 내놓은 주제를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나의 틀 바깥에서 훨씬 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보통의 시민이 이런 일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이전에는 학교 안에서 실천하는 것만 생각했는데, 시민으로서 지자체와 국가에서도 이 부분에 관해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계속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양한 틀 안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걸 배웠죠. 큰 시스템을 만드는 일과 함께 개개인들의 작은 실천도 필요하다는 걸요. 그 두 가지가 맞물리지 않으면 어느 것도 돌아가지 않으니까요.

보통의 혁신가를 마친 지금, 혁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정운  혁신이라는 말이 뭔가 사전에 검색해 봤어요.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꿔서 새롭게 하는 거래요. 하지만 완전히 바꾼다는 건 쉽지 않죠.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니까요. 재활용 이슈만 놓고 봤을 때도 수치상으로 재활용률이 높아지려면 계속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활동해야 하고 그걸 이어 나갈 새로운 다음 세대가 등장해야 완전히 바뀌어서 새롭게 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주남경  저는 저를 늘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뒤에 붙은 ‘혁신가’라는 말이 제게 사명감을 부여하는 것 같더라고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혁신이 아니에요. ‘나’로 시작해서 ‘함께’로 가다 보면 그게 혁신이 되는 것 같아요. 작은 게 해결되었을 때 두루두루 함께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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