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터뷰] <심층 인터뷰> 덕상계 어울림 송명숙 대표


채소재배 활동을 통한 노인의 사회적 고립감 해결 프로젝트

고립된 노후 …

농촌 노인들이 나섰다


▲ 덕상계 어울림 송명숙 대표


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은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농촌도 예외는 아니다. 노인들은 갈 곳을 잃었다. 마을회관, 복지관, 경로당 등 노인들이 사용하는 복지시설이 문을 닫거나 운영을 최소화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공간이 폐쇄되니 노인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자식들도 쉽게 왕래하지 못하니 노인들은 정서적인 연

결감을 잃어갔다. 집 밖으로 나가면 감염이 될까봐 노심초사하면서 점점 집 안에만 갇혀 지내게 된다.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라는 무력감은 생이 아닌 죽음으로 걸음을 옮기게 한다.

덕상계 어울림 송명숙(60) 대표는 2017년부터 참사랑 봉사단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해 지금까지 반찬배달 봉사활동을 해왔다. 오랜 시간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독거노인들을 지켜봐 왔다. 코로나19로 인해 노인들이 옴짝달싹 못한 채 생기를 잃어가는 표정을 지켜보면서 ‘뭐라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 뜨기가 싫어”

 코로나에 더욱 고립된 노인들


“반찬 배달을 가보면 농촌의 노인들이 유모차를 끌고 길거리에 철퍼덕 앉아서 하늘만 바라봐요. 예전에는 마을회관에라도 가서 이웃들과 수다도 떨고, 식사도 같이 챙겨 드셨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거죠. 밖에 나가면 코로나 걸릴까 봐, 아무 데도 가지 못해요. 반찬 갖다 드리러 가면 아침에 일어나 ‘눈 뜨기 싫다’고 푸념 섞인 말을 계속하게 되는 거예요.”


▲ 채소 재배 활동이 이루어지는 시니어 메이커 효원농장


유모차를 끌고 밖으로 나올 수 있다면 소소한 활동은 충분히 가능하다. 적당한 노동은 살아갈 의지를 만들어준다. 아침에 눈을 떠 가야 할 곳이 있고, 몸을 움직여 채소를 키워 재배한 농산물로 반찬을 만들어 이웃에게 나눔을 한다면 건강을 챙기고, 보람도 느낄 수 있으니 1석 2조 인 셈이다. 송 대표는 자신이 살고 있는 병천면을 포함해 가까이 위치한 수신면, 동면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채소 재배 활동으로 반찬 만들기’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했다.

농촌의 노인들은 농사라면 눈감고도 지을 정도로 베테랑이다. 채소 재배 정도라면 누구나 쉽게 참여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분위기와 농사라는 일이 노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뭔가 부족했다.“경계심이 심했어요. 외부로 움직이는 것을 극도로 꺼렸어요. 그렇게 반대할 줄 몰랐어요. 생각해보니 채소를 재배해서 반찬을 만들고 나눔까지 이어지는 활동이 평생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지었던 노인들에게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거예요. 농사를 짓는데 급여도 없으니. 거기다 코로나19는 생명을 위협하는 분위기였어요. 노인회, 면사무소, 복지관에 가서 홍보하고, 직접 찾아가서 설득도 해봤지만 대부분 소극적이었어요.”



▲ 채소 재배 활동이 이루어지는 시니어 메이커 효원농장


집에서 나오지 못하는 독거노인들을 보며 채소 재배 활동으로 풀어보고 싶었던 송 대표의 문제 해결 방법은 실패했다.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 방법을 찾을 때,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과 사람의 속마음까지 파악하긴 힘들다. 그럼에도 부딪히다 보면 더 좋은 방법을 찾을 가능성은 많아진다. 그러니 ‘실패’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벌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였다. 채소 재배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른 방법을 찾았다. 반찬 봉사를 해왔던 사람들을 채소 재배 활동에 참여시켰다. 함께 모여서 허리를 구부려 채소를 돌보고, 봉사 교육을 받고, 요가도 했다. 3개월 동안의 활동 결과로 보건소와 연계해서 혈압과 혈당, 콜레스테롤의 변화를 측정했다.


“채소 재배를 하는 이 비닐하우스가 ‘시니어 메이커 효원농장’ 이에요. 출근할 일터인 거죠.  30여 명이 채소 재배 활동에 참여했어요.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분들은 70세가 넘어요. 감자랑 열무, 쌈 채소류 등 다양한 채소를 재배하고, 오후에는 요가 강사를 초빙해서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평생 일만 하면서 몸을 돌본 적이 없던 분들이세요. 처음 해보는 요가가 쉽지 않죠. 강사가 웃긴 의상을 입고 참여자가 웃을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요가 동작을 따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인들이 모여서 활짝 웃을 일이 있어야 다음에 또 참여하고 성과가 좋거든요. 채소 재배할 때도 열심히 일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어요. 열무를 솎으면서 ‘이건 왜 이렇게 작아, 여기 벌레 먹었네’ 별거 아닌 말들을 하면서 웃는 거예요. 소리 내어 웃다 보면 소속감은 자연스레 생기니 채소를 재배해서 반찬을 만들고 나눔까지 생기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밖으로 나오게 할까?’

농촌 노인들의 실험은 계속된다



열무를 뽑아서 갓 담근 열무김치는 한눈에 봐도 먹음직스럽다. 방금 수확한 신선함과 손수 만든 정성이 담겨있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열무김치를 들고 혼자 사는 노인의 집을 방문한다. 혼자 사는 노인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방문하는 사람은 극히 경계한다. 하지만 음식이라면 마음의 빗장을 쉽게 열게 만든다. 집에 들어가 간단한 안부 인사를 나누며 어디가 아픈지, 힘든 것은 없는지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코로나19로 최근에는 죽음에 대한 대화가 유독 많다. 헤어질 때는 그래도 잘 살아보자고 서로 덕담을 나누는 것을 잊지 않는다.


“채소 재배 활동 참여자는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많았어요. 그런데도 웃으면서 일을 해요.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초월적인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도움을 주는 입장이지만 몇 해 지나면 이 분 들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인 거예요. 말벗이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좀 더 있다가 가라고 눈물을 글썽이는 분도 있어요.” 


▲ 직접 기른 상추를 들고 활짝 웃는 참여자들



송 대표의 집에 들어서면 한 귀퉁이에 파종한 고추 모종이 파릇하게 싹이 올라왔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시니어 농장을 이어가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많은 양의 반찬을 만들 수 있도록 넓게 만든 부엌은 나눔을 위해 365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모든 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그녀가 호기롭게 자랑하는 공간이 하나 더 있다. 번쩍번쩍 광택이 나는 최신식 음악 밴드 시설과 악기들이 깔끔하게 정렬되어 있는 음악실이다. 

‘어떻게 하면 집 안에서 나오지 않는 노인들을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 송 대표의 머릿속에는 이 질문이 떠나지 않는다. “노인들을 채소 재배 활동으로 밖으로 나오게 하

는 건 잘 안됐어요. 좀 더 재미있는 게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65세 이상으로 구성된 음악 밴드를 만들려고 음악실도 만들었어요. 시골이니까 주변 눈치 안보면서 언제든지 연주할 수 있어요. 악기를 연주하면 신나잖아요. 함께 모여서 즐겁게 웃고, 밴드라는 소속감도 가지면 노인들도 좀 더 행복할 것 같아요. 올해도 사람들과 함께 채소 재배도 할 거예요. 대신 방법을 조금 바꾸려고 해요. 도시농업처럼 분양하는 거죠. 자원봉사하실 분들에게 내어드릴 계획이에요. 올해는 참여가 잘 되겠죠.”


▲ 청년들과 함께 한 농촌 봉사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