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보조기기 수리서비스 플랫폼 구축 실험
시행착오 뒤에 숨어 있는
대안을 발견하다

▲<혁신 실험노트> 수리GO 김익수 연구원
#장애인선택권 #수리플랫폼 #당사자주도
수리GO는 리빙랩 프로젝트를 위해 나사렛대 재활공학과 공진용 교수를 비롯해 메이커스페이스 관계자, 나사렛 대학생 등이 참여해 결성된 팀이다. 수리GO는 여러 난관에 부딪히며 결국 계획했던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한 번의 실험으로 성공할 수 없다. 실패를 거듭하며 새로운 대안을 찾아가는 것이 리빙랩이다.
토머스 에디슨도 전구를 발명한 후 그동안의 실험은 실패가 아니라 안 되는 이유를 수천 가지 알아낸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실패의 경험을 기록하는 차원에서 연구 전반의 실무를 담당한 창업진흥원 나두(NADO)메이커스페이스사업단의 김익수 연구원을 인터뷰한 내용을 실험일지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실험일지 #1
장애인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재활공학과를 나온 나는 보조기기를 서비스하는 기관에서 일한 적이 있다. 아쉽게도 장애인 분들이 보조기기 장치를 수리할 때 사전에 금액이나 정보를 알 수 없었다. 만약 업체 간 수리 비용과 서비스를 비교해서 가까운 곳에 맡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민 끝에 나온 아이디어는 ‘이동보조기기 수리를 위해 사용자인 장애인과 노인 등 이동약자, 공급자인 수리서비스 업체가 참여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었다.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공급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정보를 올리고 소통할 수 있는 곳. 운영자가 개입하지 않아도 플랫폼 안에서 교류하고 정보는 저절로 쌓일 거라 생각했다. 다양한 서비스 중에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하는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를 장애인에게 주어진다면 어떨까? 다양한 수리 서비스를 검색하고 비교해 볼 수 있다면?
책임교수님과 경기도 보조기기센터의 실장님이 참여해 프로젝트팀을 구성했다. 메이커스페이스 참여기관 대표님이 홈페이지 만드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나는 대학생 6명과 관련 자료를 찾고 실험에 참여할 장애인들을 찾는 전반적인 작업을 맡았다. 4개월 남짓의 기간이었지만 사회혁신센터와 진행사항을 살펴보며 앱을 개발할지도 고려해 두었다.

▲ 리빙랩 첫 번째 회의
실험일지 #2
장애인과 수리업체, 당사자를 만나다
리빙랩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당사자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온라인 미팅을 하다 보니 당사자와 팀워크를 다지기 어려웠다. 이 실험에 참여할 장애인들을 찾는 것부터 난항이었다. 충남의 30여 개 장애인 관련 기관 단체에 협조공문을 보냈는데 코로나 전파 우려로 사람들이 모이는 프로그램 자체를 하지 않았다.
노인 장애인이 많이 참여하지 못했지만 대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40~50대 장애인들을 주로 만났다. 30명을 대상으로 유선상으로 현황이나 문제점, 플랫폼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이후 사용자, 전문가, 공급자로 구성된 포커스 그룹을 통해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장애인의 의견을 직접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서울, 경기도 지역이라면 수리 요청들을 모아서 한 번에 점검해 준다고 했다. 구입한 곳에서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 60대 중증장애인은 시장에 갔다가 보조기기가 고장 나서 오도 가도 못해 수리센터에 연락했다. 하지만 ‘현장으로 갈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위급한 상황에서 어찌하지 못할 때는 이동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 리빙랩 두 번째 회의
충남에서 이동보조기기를 공급하는 업체들도 수소문했다. 이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막상 네이버에 검색해 보면 수많은 자동차 정비소는 찾을 수 있지만 충남의 보조기기 공급업체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행정에 자료가 있을 법한데 요청했지만 받지 못했다. 일일이 물어보고 전화로 확인해 가며 충남 보조기기 공급업체 230여 곳의 리스트를 만들었다.또 다른 난관은 수리 요금 공개였다. 애초 플랫폼을 구상할 때, 업체별 수리 단가를 공개해 서비스나 요금 등을 사용자가 살펴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공급자 그룹은 공개를 꺼렸다.
업체들은 평점을 매기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경기도의 경우 비영리법인 주관으로 자료를 모아 단가표 기준 같은 것을 갖고 있다고 했다. 내부 정보인데다 지역이 달라 활용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
그래서 관심을 갖는 것이 혁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힘든 것도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었다.”
실험일지 #3
홈페이지는 만들었지만

▲ 리빙랩 세 번째 회의
한계를 알면서도 일단 사용자와 공급자가 서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도 만들자는 마음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사용자들이 홈페이지에 가입해 보조기기 수리업소를 찾고, 원하는 정보에 맞는 곳을 검색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카드 뉴스를 만들고 지역 업체에 우편을 보내 홈페이지를 홍보했다. 충남 내 주소가 있는 업체들에 우편물을 발송하고 인터넷에 수천 건 이상 홈페이지를 노출시켰다.플랫폼을 만들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운영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미처 마련하지 못했다. 사용자와 공급자가 만나면 자연스레 플랫폼의 가치가 생기고 그것을 행정에 제안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이용자를 연결할 사람이 필요했다. 홈페이지 구축 비용도 예상보다 컸다. 홈페이지는 생각만큼 제대로 구동하지 못했지만 가입자는 있었다. 운영까지 제대로 진행했어야 행정이든 어디든 더 관심을 가졌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실험일지 #4
실패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리빙랩이라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당사자를 비롯해 여러 그룹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해결점을 도출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 그래서 관심을 갖는 것이 혁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힘든 것도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었다.
장애인들의 의견은 우리가 구상한 서비스보다 능동적이고 다양했다. 본인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했다. 당사자가 직접 수리할 수 있도록
교육받길 원했다. 교육 자료를 추가로 만들었다. 앞으로 장애인들이 직접 수리할 수 있는 교육 공간과 인력이 생기면 좋겠다는 기대를 품는다. 어쩌면 기존 자원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동보조기기는 의료기기라 일반 차량 정비업소에서 수리하려면 추가 자격요건을 갖춰야 한다. 업무협약 등의 방식으로 일부분만 해결하면, 전기휠체어의 배터리 교체 같은 건 차량 정비업소에서 수리할 수 있지 않을까?

▲ 리빙랩 회의 모습
실험 과정 속에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하면 분명 달라졌다. 이동약자들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졌다. 거창하게 처음부터 전체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비는 것보다, 이동약자들이 느끼는 소소한 불편함부터 해결해간다면 조금은 수월할 것 같다.
장애인 이동보조기기 수리서비스 플랫폼 구축 실험
시행착오 뒤에 숨어 있는
대안을 발견하다
▲<혁신 실험노트> 수리GO 김익수 연구원
#장애인선택권 #수리플랫폼 #당사자주도
수리GO는 리빙랩 프로젝트를 위해 나사렛대 재활공학과 공진용 교수를 비롯해 메이커스페이스 관계자, 나사렛 대학생 등이 참여해 결성된 팀이다. 수리GO는 여러 난관에 부딪히며 결국 계획했던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한 번의 실험으로 성공할 수 없다. 실패를 거듭하며 새로운 대안을 찾아가는 것이 리빙랩이다.
토머스 에디슨도 전구를 발명한 후 그동안의 실험은 실패가 아니라 안 되는 이유를 수천 가지 알아낸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실패의 경험을 기록하는 차원에서 연구 전반의 실무를 담당한 창업진흥원 나두(NADO)메이커스페이스사업단의 김익수 연구원을 인터뷰한 내용을 실험일지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재활공학과를 나온 나는 보조기기를 서비스하는 기관에서 일한 적이 있다. 아쉽게도 장애인 분들이 보조기기 장치를 수리할 때 사전에 금액이나 정보를 알 수 없었다. 만약 업체 간 수리 비용과 서비스를 비교해서 가까운 곳에 맡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민 끝에 나온 아이디어는 ‘이동보조기기 수리를 위해 사용자인 장애인과 노인 등 이동약자, 공급자인 수리서비스 업체가 참여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었다.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공급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정보를 올리고 소통할 수 있는 곳. 운영자가 개입하지 않아도 플랫폼 안에서 교류하고 정보는 저절로 쌓일 거라 생각했다. 다양한 서비스 중에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하는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를 장애인에게 주어진다면 어떨까? 다양한 수리 서비스를 검색하고 비교해 볼 수 있다면?
책임교수님과 경기도 보조기기센터의 실장님이 참여해 프로젝트팀을 구성했다. 메이커스페이스 참여기관 대표님이 홈페이지 만드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나는 대학생 6명과 관련 자료를 찾고 실험에 참여할 장애인들을 찾는 전반적인 작업을 맡았다. 4개월 남짓의 기간이었지만 사회혁신센터와 진행사항을 살펴보며 앱을 개발할지도 고려해 두었다.
▲ 리빙랩 첫 번째 회의
리빙랩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당사자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온라인 미팅을 하다 보니 당사자와 팀워크를 다지기 어려웠다. 이 실험에 참여할 장애인들을 찾는 것부터 난항이었다. 충남의 30여 개 장애인 관련 기관 단체에 협조공문을 보냈는데 코로나 전파 우려로 사람들이 모이는 프로그램 자체를 하지 않았다.
노인 장애인이 많이 참여하지 못했지만 대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40~50대 장애인들을 주로 만났다. 30명을 대상으로 유선상으로 현황이나 문제점, 플랫폼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이후 사용자, 전문가, 공급자로 구성된 포커스 그룹을 통해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장애인의 의견을 직접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서울, 경기도 지역이라면 수리 요청들을 모아서 한 번에 점검해 준다고 했다. 구입한 곳에서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 60대 중증장애인은 시장에 갔다가 보조기기가 고장 나서 오도 가도 못해 수리센터에 연락했다. 하지만 ‘현장으로 갈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위급한 상황에서 어찌하지 못할 때는 이동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 리빙랩 두 번째 회의
충남에서 이동보조기기를 공급하는 업체들도 수소문했다. 이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막상 네이버에 검색해 보면 수많은 자동차 정비소는 찾을 수 있지만 충남의 보조기기 공급업체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행정에 자료가 있을 법한데 요청했지만 받지 못했다. 일일이 물어보고 전화로 확인해 가며 충남 보조기기 공급업체 230여 곳의 리스트를 만들었다.또 다른 난관은 수리 요금 공개였다. 애초 플랫폼을 구상할 때, 업체별 수리 단가를 공개해 서비스나 요금 등을 사용자가 살펴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공급자 그룹은 공개를 꺼렸다.
업체들은 평점을 매기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경기도의 경우 비영리법인 주관으로 자료를 모아 단가표 기준 같은 것을 갖고 있다고 했다. 내부 정보인데다 지역이 달라 활용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
그래서 관심을 갖는 것이 혁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힘든 것도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었다.”
▲ 리빙랩 세 번째 회의
한계를 알면서도 일단 사용자와 공급자가 서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도 만들자는 마음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사용자들이 홈페이지에 가입해 보조기기 수리업소를 찾고, 원하는 정보에 맞는 곳을 검색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카드 뉴스를 만들고 지역 업체에 우편을 보내 홈페이지를 홍보했다. 충남 내 주소가 있는 업체들에 우편물을 발송하고 인터넷에 수천 건 이상 홈페이지를 노출시켰다.플랫폼을 만들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운영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미처 마련하지 못했다. 사용자와 공급자가 만나면 자연스레 플랫폼의 가치가 생기고 그것을 행정에 제안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이용자를 연결할 사람이 필요했다. 홈페이지 구축 비용도 예상보다 컸다. 홈페이지는 생각만큼 제대로 구동하지 못했지만 가입자는 있었다. 운영까지 제대로 진행했어야 행정이든 어디든 더 관심을 가졌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리빙랩이라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당사자를 비롯해 여러 그룹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해결점을 도출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 그래서 관심을 갖는 것이 혁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힘든 것도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었다.
장애인들의 의견은 우리가 구상한 서비스보다 능동적이고 다양했다. 본인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했다. 당사자가 직접 수리할 수 있도록
교육받길 원했다. 교육 자료를 추가로 만들었다. 앞으로 장애인들이 직접 수리할 수 있는 교육 공간과 인력이 생기면 좋겠다는 기대를 품는다. 어쩌면 기존 자원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동보조기기는 의료기기라 일반 차량 정비업소에서 수리하려면 추가 자격요건을 갖춰야 한다. 업무협약 등의 방식으로 일부분만 해결하면, 전기휠체어의 배터리 교체 같은 건 차량 정비업소에서 수리할 수 있지 않을까?
▲ 리빙랩 회의 모습
실험 과정 속에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하면 분명 달라졌다. 이동약자들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졌다. 거창하게 처음부터 전체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비는 것보다, 이동약자들이 느끼는 소소한 불편함부터 해결해간다면 조금은 수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