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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이 한 명의 연대. 이주민들의 조력자 리가쵸잘리

세상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이 한 명의 연대

이주민들의 조력자, 리가쵸 잘리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보통의 일요일 오후라면 남은 주말을 아쉬워하며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조금 늘어져 있거나, 아니면 주중에 시간 내기 어려운 문화생활이나 짧은 여행을 하고 있을 시간일 테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온 리가쵸 잘리 씨의 일요일은 보통의 평일과 다르지 않았다. 그가 일하는 이주노동자센터는 일요일인데도 사람들로 붐볐다. 어떤 사람들은 주말에 더 바쁠 수밖에 없구나. 정신없는 와중일 텐데 그래도 잘리 씨는 따듯한 인사로 맞아주었다. 사무실에서는 인터뷰가 불가능해서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시끄럽기도 했지만 센터에서는 계속 누군가 잘리 씨를 찾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잘리 씨는 어디서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오히려 미안해했다.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곳에 마음을 걸어주느라 도통 정리가 불가능했던, 쉴 수 없던 잘리 씨를 만났다.

 


오늘이 일요일인데, 매일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괜찮으세요?

할 수만 있다면 저도 일요일까지 일하고 싶지는 않죠. 그런데 꼭 해야 할 수밖에 없어서 하고 있어요. 저는 아산 이주여성연대, 아산 이주노동자센터 그리고 청소년문화센터, 다문화세계 시민교육센터 등 여러 단체를 다니면서 활동하고 있어요. 그나마 코로나 기간에 조금 여유로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하루도 쉬는 날이 없어요.

 

한국에 오래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동안 어떤 일을 해온 건가요?

1999년부터 영어강사 일을 하면서 지냈어요. 아산 이주노동자센터는 2014년부터 근무하기 시작했는데, 이미 그 이전인 2008년부터 봉사로 인연을 맺었어요. 이주노동자센터 우삼열 소장님과 그때부터 같이 일을 했지요. 경찰서랑 이주노동자센터에서 봉사를 하다가 2012년에 천안에서 아산으로 이사를 오면서 이곳의 필리핀 공동체 대표를 맡게 되었고요. 이주노동자센터에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때마다 달려가서 도움을 주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소장님께서 정식으로 같이 일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주셔서 2014년부터 봉사 차원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기로 하고 시작했는데, 일이 너무 많더라고요. 이주노동자 지원만이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노동인권과 관련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도 1년 정도 일을 했어요. 공단에서 3일, 이주노동자 센터에서 2일 이런 식으로 일을 했는데 이주노동자센터에서 저를 필요로 하는 일이 더 많아서 1년 후에 이주노동자센터에 전념하게 됐어요.

 

주로 이주민 지원, 인권 개선 등과 관련한 활동이었던 거군요.

네, 아산이나 천안에서 활동하는 분이 없어서 제가 많이 활동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경찰서나 출입국사무소, 교육청, 청소년문화센터에서 교육 특히 영어와 관련해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교육 관련해서는 다문화 아이들 교육과 관련한 일들을 주로 하고 있고요. 이주민 노동자들 중에 월급이나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우리 센터로 문의가 들어와요. 아산 이주여성연대라고 결혼이민자 연대 모임이 있어요. 출신 국가와 상관없이 연대하고 활동하는 모임인데 코로나 이후 활동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어졌어요. 그런데 결혼이민자들의 우울증이나 여러 사건들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에요.

 

처음에 어떻게 연결되어 활동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결혼이민자들은 한국 내에서 많은 문제에서 방치되거나 무관심의 영역에 있어요. 가령 면허를 따서 운전을 하고 싶은데, 국내에 외국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운전면허 교재가 없어요. 그래서 면허를 따고 싶어도 안 되는 거죠. 그런 상황을 알고 아산경찰서에서 운전면허교실을 만들었는데 저도 거기 참여해서 운영에 도움을 주었어요. 그때 인연으로 아산경찰서에서 결혼이민자들이 모여 ‘마미폴’이라는 걸 만들었지요. 운전면허교실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함께 만들었는데 결혼이민자들로 만들어진 지역 치안봉사단이었어요. 같이 지역순찰도 나가고 여러 가지 활동들을 했어요. 그렇게 결혼이민자들끼리 모이면서 각자가 처한 상황과 환경들을 공유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모이기 시작하면서 이주여성연대가 만들어졌지요.

 

같이 배우면서 만난 인연이 활동의 기반이 되었던 거네요. 이주여성연대 활동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에 모여서 서로 상황을 공유하고 문제들을 살펴보니 우선적으로 가장 필요한 게 통역사 지원인 거예요. 결혼이민자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상담이나 지원을 받으려고 해도 통역사가 부족하다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지원이 필요했어요. 폭력을 당했는데 전문적인 지원체계가 없다보니, 도움을 요청해도 ‘남편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이런 식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전문적인 도움이 아니라요. 그러다 어떤 여성분이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런 피해를 입은 분들이 집에서 나와 지낼 수 있도록 이주여성연대에서 저렴한 집을 구해서 쉼터를 만들었어요. 그런 상황들이 많아지면서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우리끼리 모금 행사를 만들었어요. 이주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알리는 행사를 진행을 했는데 천만원이 모였어요. 공공기관도 아니고, 내용적으로 부족한 행사였는데 많이 모인 거죠. 그 돈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센터를 운영하고 많이 확장하게 됐어요. 나중에는 같이 일하는 분들 사이에서 하고 싶은 일도 다르고 또 각각의 성격도 다르다보니 마찰도 있었지만, 어쨌든 결혼 이민자를 지원하는 일은 계속 했어요.

 

‘남편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말은 심지어 한국 여성들도 듣는 말이에요. 그만큼 뿌리 깊은 차별 구조인 거죠. 그런 한국 사회 또 지역사회의 편견과 싸우려니 힘들었을 것 같아요.

활동을 할수록 문제를 발견하게 돼요. 이후 아산이주여성연대와 아산이주노동자센터가 계속 같이 관심을 가지고 발견한 게 결혼 이주여성들의 비자 문제였어요. 저는 1996년에 한국 국적을 받았는데 지금은 국적을 쉽게 주지 않아요. 결혼 이주여성들은 결혼 이후 몇 년마다 계속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데 이 연장 절차에 남편의 동의가 필요해요. 혼자서는 비자를 연장할 수 없어요. 가정폭력을 당하면서도 비자를 연장해 한국에서 계속 지내려면 남편의 동의가 필요한 구조인 거예요. 만약 폭력을 당했을 때 법원에 가서 법적 판결을 받으면 그때는 남편의 동의 없이도 비자를 받을 수 있지만 그건 너무 어려운 과정이에요. 더군다나 한국에서 이혼을 하더라도 필리핀은 이혼이 어려운 나라라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겨요. 한국에서 이혼을 했더라도 필리핀에서는 계속 결혼인 상태인 거예요. 그래서 이혼을 하면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필리핀으로 가기가 너무 어려워요. 필리핀에서 이혼을 하려면 변호사를 고용해서 이혼을 진행해야 하는데 비용이 천만원 정도 들고 기간도 심하면 10년이 걸리기도 한대요. 여전히 개선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에요.

 


"그렇게 결혼이민자들끼리 모이면서 각자가 처한 상황과 환경들을 공유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모이기 시작하면서 이주여성연대가 만들어졌지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정말 답답하시겠어요. 계속 지금처럼 일을 할 수 있는 동력이 있다면 뭘까요?

글쎄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옛날부터 지금까지 똑같아요. 저도 전화를 받지 않고 싶은데 계속 전화가 와요. 핸드폰을 꺼두면 될 것 같지만, 그렇다고 일이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동안 누가 내 대신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이 밀리게 되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바로바로 일을 하고 있어요. 그나마 대면해서 해야 했던 강의들을 줌으로 할 수 있게 되면서 조금 여유가 생겼어요. 누군가 도와달라고 연락을 하면 거절하기가 쉽지 않아요. 마음에 걸려요. 오늘 인터뷰도 사실 일과 겹치니까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것도 또 밀릴까봐 그냥 잠깐 시간을 내서 한다고 한 거예요.

 

정말 많은 사연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요즘 계속 연락을 하는 분이 있어요. 결혼 이민자인데 새벽 3시에도 전화가 와요. 산후우울증이 있는 분인데 지난주부터 여러 센터랑 시청 가족과 등등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에 연결을 해주고 있어요. 지금 도시가스와 관리비를 납부하지 못해서 물이 안 나오는 상황이에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를 통해서 집에 물이 나오지 않는 걸 알았어요. 그럼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어떡하냐고 물었더니 그냥 참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아동학대다, 이렇게 지내면 안 된다고 말을 해도, 산후우울증 때문에 기복이 심해서 상황이 개선되지 않더라고요. 어느 날은 괜찮았다가 어느 날은 또 많이 힘들어서 아무것도 개선이 안 되는 거예요. 아이도 집에 있기가 힘드니까 자주 집을 나와서 방황하거나 친구네 집에서 지내거나 한대요. 아이가 없어졌다고 저한테 연락이 와서 달려가서 같이 아이를 찾은 적도 있는데, 엄마는 한참 동안 아이가 없어진지도 모르고 찾지도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이후에 동사무소나 관리사무소, 또 봉사센터 등에 말을 해놓았어요. 다른 일정이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제가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가서 같이 상담을 받기도 했고요. 지금도 계속 연락을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결혼 이민자들의 문제 외에도 다른 일들이 많이 있나요?

그럼요. 천안·아산에도 미등록 이주민들이 많이 있어요. 그분들이 월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미등록 이주민들은 지원해주기가 힘들어요. 다른 센터나 기관들은 아예 미등록 이주민들을 받아주지 않아요. 공공기관에서는 지원해주기가 힘들어서 비영리단체나 NGO단체로 찾아가라고 하는데 그런 분들 대부분이 우리 이주노동자센터로 와서 지원을 해드리는 경우가 많아요. 지역에서 저희밖에 없어서 지난주에도 제가 직접 예산이나 홍성도 다녀오고 그랬어요.

 

잘리 씨 같은 분이 지역에 한 10명, 20명은 있어야 그래도 사람들이 조금은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문제들을 대하면서 그래도 꿈을 가져본다면요?

이주민들에게 안전한 일자리가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지금 일하고 있는 통역사분들 뿐만 아니라 이주민들에게 지금 안전한 일자리가 없어요. 안전하게 4대 보험도 보장되는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게 된다면 기쁠 것 같아요. 최근에 결혼이민자들이 공장에서 4대 보험 가입을 하고 안전하게 일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는데,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더 많은 안전한 일자리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소박한 꿈이면서 또 원대하게 들리네요. 정말 큰 희망사항을 가진다면요?

만약 바뀔 수 있다면, 정말로 시스템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결혼이민자들이나 모든 외국인들을 지원할 수 있는 하나의 센터 같은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다가 많이 돌아가셨어요. 저희가 지원하던 한 필리핀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사망한 큰 사건이 있었어요. 기계에 끼어서 돌아가셨거든요. 그런데 대사관이나 다른 기관의 도움을 하나도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같이 항의하고 계속 싸웠더니 고용노동부의 시스템이 조금은 바뀌었어요. 잘된 일이었죠. 이 사건 말고도 여러 가지 사고로 사망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하지만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이 있어요. 앞에 말한 것처럼 시스템이 바뀌고 센터가 그 가족들을 연결해주고 지원해줬으면 좋겠어요. 지원 서비스를 연결해주는 콜센터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아이들을 맡기고 자유롭게 일하러 갈 수도 있고 또 비자를 발급받는 것도 한 번에 가능한 원스톱지원센터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중에도 여러 번 전화가 걸려오던 리가쵸 잘리 씨.


" 만약 바뀔 수 있다면, 정말로 시스템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결혼이민자들이나 모든 외국인들을 지원할 수 있는 하나의 센터 같은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쉬고 싶다던가, 아니면 잘리 씨 개인을 위한 꿈은 없으세요?

나중에요. 내년에 아들이 미국으로 대학을 갈 예정이라, 아마도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갈 것 같아요. 그때는 쉴 거예요. 제 꿈은 다시 필리핀에 가서 호텔이나 숙박업소 같은 곳에서 일하는 거예요. 옛날에 공부나 여행으로 필리핀에 온 유학생들을 가이드하고 숙박할 수 있도록 한 달 아니면 6개월 동안 케어를 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쉼터 같은 집을 만들고 싶어요.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대단한 활동을 하고 계신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에 대해 점수를 주셔도 될 것 같아요.

아직 다 이야기하지 못한 슬픈 사연들도 많지만 그래도 한국에 와서 좋았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어떡하지, 나는 아무런 힘이 없는데…’라는 식으로 생각했었거든요. 지금은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당당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옛날부터 문제나 곤란한 상황에 부딪히면 ‘그게 무슨 상관이야’ 하면서 기운을 냈는데 그러다보니 이렇게 강해졌네요.

 


지금까지 가까이에서 또 멀리에서 많은 활동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러면서 ‘저런 사람이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다. 그런데 잘리 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 이분은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지역에 필요하고 중요한 일을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리 씨가 말한 시스템을 바꾸는 일을 누가 할 수 있을까? 이주민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많은 민원을 받는다고 나서지 않을 것이다. 결국 잘리 씨 같은 분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시스템을 바꿔나가야 하는 것일 테다. 아무런 힘도 없던 한 사람에서 누구보다 당당하게 많은 힘으로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리가쵸 잘리 씨의 이야기에 어떤 책임감과 함께 응원을 건넨다. 앞으로도 시간을 가리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에 시간을 쪼개고 마음을 건넬 잘리 씨를 마음 다해 응원한다.



인터뷰이 | 리가쵸 잘리   글·정리 | 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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