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감이여’라는 책이 있다. 한글학교에 다니는 할머니들의 요리 레시피를 서툰 글과 그림으로 옮긴 책이다. 입말을 살린 재미와 감동이 있어 대통령이 언급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고 유퀴즈에 나올 정도의 유명세를 탔다. 이 책은 사실 충남평생교육진흥원 문해교육 프로그램의 결과 자료집이었다. 프로그램의 기획하고 책을 완성한 사람은 사서 공무원 신효정 씨다. 할머니들을 만나 요리 이야기를 듣고 그 과정을 꼼꼼하게 사투리와 입말을 살려 기록하고, 청소년 봉사자를 모집해 그림을 그려 책을 완성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눈이 밝은 한 편집자 덕분에 ‘요리는 감이여’라는 상업출판물로 탄생했다. 도서관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의 자료집 중 이렇게 성공적인 결과를 만든 걸 처음 봐요.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 효정 씨처럼 책을 잘 만들게 되나요? 전혀요. 문집은 자주 만드는 것 같아요. 예전에 동아리 문집 만드는 일을 한 적이 있어요. 처음엔 제가 직접 글을 쓴 것도 아닌데 이런 걸 왜 만들어야 하는지, 하기가 싫었어요. 책을 다루는 사서이긴 하지만 책을 어떻게 편집하는지, 만드는지 잘 모르니깐 어려움이 많더라고요. 한번은 공주 유구 도서관에서 일할 때였는데, 그 때도 출판사에서 영업을 오신 적이 있어요. 저는 서울에서 이런 시골 구석까지 찾아오다니 대단한 열정이다 싶어서 차를 내어드렸거든요. 도서관에서 일 하다보면 출판사 분들을 많이 만나요. 사실 이런 분들이 너무 많다보니까 정성스럽게 응대를 하는 일이 어렵거든요. 대부분 부탁하러 오시는 분들이니까, '네 책 두고 가세요~' 이런 태도로 대해요. 그런데 저는 그래도 외부에서 손님이 오신거니 차를 내어드렸던 것 같아요. 시골 구석에 있는 규모가 크지 않은 도서관까지도 찾아오시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먼 길이기도 하니깐요. 그런데 이런 대접을 받아보신 적이 별로 없으신지 차를 내려드리니까 되게 고마워하셨어요. 그렇게 잠깐 앉아서 얘기하다보니까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어려운 일 있으면 전화하라고 명함을 주고 가셨어요.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겠죠. 그런데 저는 진짜 전화를 했어요. 도서관에서 문집을 만드는데 너무 어렵다, 책은 어떻게 만드는거냐고 막 이런 저런 초보적인 질문을 했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성의껏 도와주시는거예요. 신기한 인연이네요. 출판사 분들이 바빠서 일을 도와주기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알고보니 도움을 주셨던 출판사 분이 그 업계에서는 꽤 잔뼈가 굵은 편집자이셨던 거예요. 지금은 다들 꽤 높은 직책들을 맡고 계시죠. 그런 분들이 애들 그림 모아서 가져가면 직접 스캔도 해주시고 디자이너 연결해주시고, 자기 일처럼 도와주셨어요. 제가 막 전화해서 귀찮게 굴어도 성심껏 도와주신 덕분에 상업출판에 버금가는 그림책을 만들게 되었죠. 그렇게 도움을 받아 그림책을 만든 것이 첫 시작이었어요. 1년 동안 30회짜리 수업을 했는데 모두가 각자의 책을 만들었어요. 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 물어가면서 책을 완성했죠. 
'요리는 감이여'라는 책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거예요? 평생교육원에서 일할 때 일이에요. 문해교육이라고 글을 모르는 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원의 업무 중 하나였어요. 대부분 글을 배우면서 시를 쓰거나, 시화를 만드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해죠. 저는 그것보단 할머니들이 제일 잘하는 것, 요리란 주제로 진행해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번쩍 났어요. 그 결과물로 요리책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글을 가르쳐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일을 좀 많이 하는 타입이에요. 사무적으로 필요한 일은 빨리 처리하는 편이고 프로그램 기획서를 열심히 써서 냈어요. 처음엔 반려를 당했어요. 제가 그렇다고 포기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이 사람을 설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3개월을 계획서를 수정하면서 설득하고 결국 허락을 받았죠. 처음에는 난감해하셨어요. ‘할머니 요리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라고 물으면 아이 뭐 그런 걸 해 하면서 그냥 막 하면 되지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어요. 몸에 밴 과정이지 이걸 말이나 글로 풀어보신 적이 없으시잖아요. 그래서 천천히 만나면서 그 과정들을 열심히 채록했어요. 학생들과 모집해서 천천히 요리 과정들을 정리하고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도 했고요. 그렇게 충남의 3개 지역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 지역에 디자이너를 추천을 받아서 책을 만들었죠. 그 때도 잘 모르니까 디자이너 분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몰라요. 그래도 정말 정성껏 작업해주셨어요. 책이 나온 이후에 동네 작은 서점의 공간을 빌려 출판 기념회를 열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게 어떻게 창비의 출판으로 연결되었죠? 천안에 작은 책방에서 출판 기념회를 했다고 했잖아요. 그 책방 사장님께서 출판 기념회 소식을 블로그에 올리신 거예요. 그걸 창비의 편집자님이 보시고 연락을 보셨어요. 그래서 만나게 되었는데 이 사람도 뭔가 꽂힌 게 있으면 약간 미쳐버리는 사람인거에요. 둘이 처음 만났는데 신이나서 떠들곤 책을 만들자고 결정을 했어요. 책을 만드는 과정은 어떠셨어요? 제가 일을 빨리 빨리 하는 타입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출판사에서 뭔가 요청이 오면 바로 처리하고 그랬는데, 그게 또 엄청 좋았나봐요. 보통은 관공서와 함께 일할 때 대답이 하루종일 걸리거나 요청 자료를 받기 어렵거든요. 그런데 제가 뭐든 2시간 내로 처리해주니까 그 편집자분이 ‘이 사람은 정말 책에 미쳤구나’ 라는 생각을 했대요. 제가 그때 일을 하면서 약간 마음이 떠나있는 상태였거든요. 연차가 쌓였는데 승진에서 누락되었어요. 제가 열심히 일을 한 것에 비해 제대로 된 보상을 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책에 몰두했던 것 같아요. 약간 독기가 올라서.(웃음) 책을 만들다보니까 프로그램을 정리한 것이랑, 상업 출판 책으로 나오는 것이랑 차이가 있더라고요. 원고를 보다보니 부족한 것이 많아서 또 할머니들 찾아가서 얘기해 달라고 조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안 하시려고 하는 분은 집으로 찾아가서 밥 먹으면서 얘기 듣고 그랬어요. 제가 많이 힘들게 해드렸는데 지나고 보니 재미있었다고 말씀들 해주시더라고요.


찾아보니 이 책 한권만 아니라, 다른 책들도 기획하셨더라고요. ‘오늘이 내 인생의 봄날입니다’라는 책도 만들었어요. 그 때도 제가 커피 타드린 걸 계기로 인연이 만들어졌죠. 할머님들이 직접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쓰시고 그 이야기를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이 그림으로 담았죠. 그걸 다산북스에서 편집해서 상업 출판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할머니들 시집도 냈어요. '자꾸 자꾸 사람이 예뻐져'라는 책이에요. 이 과정도 에피소드가 많죠.(웃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너무 궁금해요. ‘요리는 감이여’가 잘 된 이후로 여러 군데에서 할머니를 소개시켜달라고 요청이 와요. 어느 날엔 방송사에서 할머니들이 시를 쓰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할머니를 소개시켜달라고 하더라고요. 그 때 저는 다른 지역으로 업무 이동을 해서 처음엔 거절을 했어요. 방송을 도우려면 많은 품이 필요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 분도 계속 요청을 하시길래 결국 하게 되었죠. 이야기를 잘 하시고, 밝고 따뜻한 여사님을 추천드렸어요. 할머니가 엄청 웃음이 많으시고 프로그램 촬영을 하시는데 설레 하셨어요. 잠시 일이 있어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인데 이 일을 듣고 다음 날 바로 퇴원을 하셨대요.(웃음) 그런데 촬영을 하는 날 보니, 알고보니 할머니가 한글을 잘 못 쓰시는 거에요. 기획은 할머니의 일생을 돌아보고 시 쓰는 방법을 배우면서 직접 쓰는 거였는데 그게 어려웠죠. 그래서 시인과 함께 할머니의 이야기를 채록하고 입말을 시로 옮기는 작업을 했어요. 합작이라고 할 수 있죠. 방송은 아직 나가지 않았고 책이 나와서 얼마 전에 출판 기념회를 했어요. 할머니가 엄청 좋아하셨어요. 가족들을 다 초대하고 한복을 차려입으시고 출간 파티를 했어요. 저는 원래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감동 받아서 울기도 하고.할머니 쫓아다니고 매니저 하느라 힘들어서 울고.(웃음) 원래 사서라는 직업이 이렇게 프로그램도 많고 활동적인 직업인가요? 아니라서 제가 많이 힘이 들죠. '요리는 감이여'가 잘 되고 제가 한동안 정말 방송에 다니면서 할머니들 매니저를 다 했어요. 방송 3사에 다 가보고, 6시 내고향, 라디오 방송, 심지어 유퀴즈까지 나갔어요. 힘이 드니까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라는 생각으로 일해요. 일 벌이지 말아야지 다짐하고요. 그런데 이번에도 책 하나를 더 준비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처음 책이 엄청 잘되니까 편집자 분과 두번째 책도 만들고 싶었죠. 충남 지역에는 다문화 가족이 많다 보니까 이들하고 함께 뭔가를 해보고 싶단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요리는 감이여 할머니들처럼, 이들도 자신의 나라에서 먹는 가정식 잘 하는 요리들이 있을거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건 정말 미친 듯이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서천도서관에 발령을 받고 바로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할머니에 이어, 이주여성들의 요리책이라니. 흥미로운데요. 다문화이주여성에 대한 시선이 굉장히 극단적이잖아요. TV프로그램에선 깔깔 웃으면서 가족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결혼 이주여성이 나오는데, 한편으로는 미등록 체류자의 이미지도 있고요. 현실은 농가에서 일하고,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는 그런 일들도 있고요. 자신의 나라에서는 집밥을 차려먹는 사람들일텐데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건 할머니 책보다 더 어려웠어요. 언어의 장벽이 만리장성만큼 높더라고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채록을 해야 하는데, 말이 안 통하다 보니 라포 형성도 어렵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웠어요. 음식에 얽힌 일화, 감정이 담긴 이야기들을 기대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어요. 대화하기 위해서 계속 번역기를 돌리고. 그런 과정이 어려웠어요. 지금 서천도서관 관장으로 계신데, 다른 일들도 동시에 하셔야하잖아요. 그러니까요. 원고가 잘 안 나오는 걸 보면 참지 못하고 또 인터뷰를 하러 나가고, 그 와중에 기관장 역할을 해야 하고. 올해는 조금 바쁘게 일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만들어서 일을 하세요? 매일 반복되는 업무들은 그냥 하면 되요. 그런데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는 남들이 안 한 것, 재미있는 것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제가 한번 한 일을 두 번 못해요. 늘 재미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떠올라요. 그걸 막는 것이 숙제죠.(웃음) 일을 하면서 돌아보니 자기 만족감이 제일 중요한 사람 같아요. 사람들이 좋아하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도 만들어내고, 심지어 운이 좋게 결과까지 좋았으니깐요. 거기에 보람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럼 힘드신 적은 없으신가요? 있죠. 공무원은 승진으로 인정을 받는 직업인데 승진에 누락된 적이 있어요. 저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인정을 제대로 못 받는다고 생각해서 정말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참 했어요. 2년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나 이제 그만둘거야'를 습관처럼 말하고 다녔죠. 실제로 그만두고 책방을 하고 싶어서 땅을 알아보러 다니기도 했고요.(웃음) 그런데 책방으로 먹고 살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일들은 돈이 벌리지 않는 일인데, 책을 팔아서 그 일을 만들어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란걸 알았어요. 그렇게 2년을 방황을 하다가 결국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누가 돈도 내주고 월급도 주네? 좋은 일이잖아?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었죠. 관점이 바뀌니까 행복해지더라고요. 지금은 어쨌든 승진을 했는데 권한의 폭이 넓어져서 좋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눈치 안보고 할 수 있죠. 직원들이 도리어 '그래도 되요?'라고 물어요. 선생님이 일을 하면서 주변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아이디어가 많지만 사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을 하고 있어요. 아까 말씀드렸던 출판사 선생님들, 편집자들이 안 계셨으면 못 만들었을 거예요. 제가 수시로 투덜투덜 거리면서 귀찮게 하고 물어봐도 늘 자기 일처럼 도와주세요. 보통 할머니들, 시골 동네의 아이들, 이주여성들을 주로 만나서 프로그램을 해왔잖아요. 그들과 함께 하는 이유, 취지 같은 것을 잘 설명하고 설득하는 편인 것 같아요.
이번 도서관에선 올해 어떤 활동을 하세요? 아, 일을 안 벌이겠다고 다짐은 했지만 얼마 전에 좋은 아이디어가 또 생각났어요. 많은 도서관에서 생애주기별 책 꾸러미 활동을 많이 하는데요.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216명이에요. 굉장히 적은 편이죠. 그렇지만 규모가 작다 보니 이 아이들에게 세심한 접근이 가능한 거에요. 그래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책 꾸러미를 선물하고 싶었어요. 그것도 그냥 책을 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티커나 이런 정도를 넣어서 주려고 했죠. 그런데 뭔가 부족해서 주변에 또 도움을 요청했어요. 원래는 책가방 정도에만 넣으려고 했는데, 주변에 보자기 공예를 하시는 분이 있는거에요. 그래서 전화로 말씀드리니 "그 꾸러미는 선물이지 않니"하시면서 보자기로 예쁘게 싸서 선물하면 좋겠다고, 자기가 포장을 도와주시겠다고도 하셨어요. 저는 그냥 던졌을 뿐인데, 포장 디자인 여러 개를 보여주시면서 이건 어떠냐고 물어보시고. 정말 감사한 일이죠. 도서관에서 그런 일을 하는지 몰랐어요. 도서관 사서는 사실 여유롭고 느긋한 직업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심지어는, 함께 일하는 사서 한 분이 자료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누가 민원을 넣으셨대요. 우리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책을 읽는다고. 그 직원이 의기소침해져 있는데 저는 당당하게 읽으라고 했어요. 사서는 책을 다루는 직업이고 누군가 문의해왔을 때 대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냐, 사서는 당연히 책을 읽어야한다 편하게 읽으라는 말을 했어요. 서천은 작은 지역이다보니까 문화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요. 올해는 다양한 명사들을 모시고 한 달에 한 번씩 북토크를 하는 기획을 했어요. 도서관 강사료가 정말 짠데, 고맙게도 이런 작은 지역까지 와주시는 작가분들이 꽤 있었어요. 교육청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일의 흐름을 조금 알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에게 조금의 권한이 생겼죠. 조금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을 벌이지 않기로 했는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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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을 찾는 도서관 사서
서천도서관 관장 신효정
‘요리는 감이여’라는 책이 있다. 한글학교에 다니는 할머니들의 요리 레시피를 서툰 글과 그림으로 옮긴 책이다. 입말을 살린 재미와 감동이 있어 대통령이 언급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고 유퀴즈에 나올 정도의 유명세를 탔다.
이 책은 사실 충남평생교육진흥원 문해교육 프로그램의 결과 자료집이었다. 프로그램의 기획하고 책을 완성한 사람은 사서 공무원 신효정 씨다. 할머니들을 만나 요리 이야기를 듣고 그 과정을 꼼꼼하게 사투리와 입말을 살려 기록하고, 청소년 봉사자를 모집해 그림을 그려 책을 완성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눈이 밝은 한 편집자 덕분에 ‘요리는 감이여’라는 상업출판물로 탄생했다.
도서관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의 자료집 중 이렇게 성공적인 결과를 만든 걸 처음 봐요.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 효정 씨처럼 책을 잘 만들게 되나요?
전혀요. 문집은 자주 만드는 것 같아요. 예전에 동아리 문집 만드는 일을 한 적이 있어요. 처음엔 제가 직접 글을 쓴 것도 아닌데 이런 걸 왜 만들어야 하는지, 하기가 싫었어요. 책을 다루는 사서이긴 하지만 책을 어떻게 편집하는지, 만드는지 잘 모르니깐 어려움이 많더라고요.
한번은 공주 유구 도서관에서 일할 때였는데, 그 때도 출판사에서 영업을 오신 적이 있어요. 저는 서울에서 이런 시골 구석까지 찾아오다니 대단한 열정이다 싶어서 차를 내어드렸거든요.
도서관에서 일 하다보면 출판사 분들을 많이 만나요. 사실 이런 분들이 너무 많다보니까 정성스럽게 응대를 하는 일이 어렵거든요. 대부분 부탁하러 오시는 분들이니까, '네 책 두고 가세요~' 이런 태도로 대해요. 그런데 저는 그래도 외부에서 손님이 오신거니 차를 내어드렸던 것 같아요. 시골 구석에 있는 규모가 크지 않은 도서관까지도 찾아오시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먼 길이기도 하니깐요.
그런데 이런 대접을 받아보신 적이 별로 없으신지 차를 내려드리니까 되게 고마워하셨어요. 그렇게 잠깐 앉아서 얘기하다보니까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어려운 일 있으면 전화하라고 명함을 주고 가셨어요.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겠죠. 그런데 저는 진짜 전화를 했어요. 도서관에서 문집을 만드는데 너무 어렵다, 책은 어떻게 만드는거냐고 막 이런 저런 초보적인 질문을 했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성의껏 도와주시는거예요.
신기한 인연이네요. 출판사 분들이 바빠서 일을 도와주기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알고보니 도움을 주셨던 출판사 분이 그 업계에서는 꽤 잔뼈가 굵은 편집자이셨던 거예요. 지금은 다들 꽤 높은 직책들을 맡고 계시죠. 그런 분들이 애들 그림 모아서 가져가면 직접 스캔도 해주시고 디자이너 연결해주시고, 자기 일처럼 도와주셨어요. 제가 막 전화해서 귀찮게 굴어도 성심껏 도와주신 덕분에 상업출판에 버금가는 그림책을 만들게 되었죠. 그렇게 도움을 받아 그림책을 만든 것이 첫 시작이었어요. 1년 동안 30회짜리 수업을 했는데 모두가 각자의 책을 만들었어요. 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 물어가면서 책을 완성했죠.
'요리는 감이여'라는 책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거예요?
평생교육원에서 일할 때 일이에요. 문해교육이라고 글을 모르는 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원의 업무 중 하나였어요. 대부분 글을 배우면서 시를 쓰거나, 시화를 만드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해죠. 저는 그것보단 할머니들이 제일 잘하는 것, 요리란 주제로 진행해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번쩍 났어요. 그 결과물로 요리책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글을 가르쳐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일을 좀 많이 하는 타입이에요. 사무적으로 필요한 일은 빨리 처리하는 편이고 프로그램 기획서를 열심히 써서 냈어요. 처음엔 반려를 당했어요. 제가 그렇다고 포기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이 사람을 설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3개월을 계획서를 수정하면서 설득하고 결국 허락을 받았죠.
처음에는 난감해하셨어요. ‘할머니 요리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라고 물으면 아이 뭐 그런 걸 해 하면서 그냥 막 하면 되지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어요. 몸에 밴 과정이지 이걸 말이나 글로 풀어보신 적이 없으시잖아요. 그래서 천천히 만나면서 그 과정들을 열심히 채록했어요. 학생들과 모집해서 천천히 요리 과정들을 정리하고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도 했고요. 그렇게 충남의 3개 지역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 지역에 디자이너를 추천을 받아서 책을 만들었죠. 그 때도 잘 모르니까 디자이너 분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몰라요. 그래도 정말 정성껏 작업해주셨어요. 책이 나온 이후에 동네 작은 서점의 공간을 빌려 출판 기념회를 열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게 어떻게 창비의 출판으로 연결되었죠?
천안에 작은 책방에서 출판 기념회를 했다고 했잖아요. 그 책방 사장님께서 출판 기념회 소식을 블로그에 올리신 거예요. 그걸 창비의 편집자님이 보시고 연락을 보셨어요. 그래서 만나게 되었는데 이 사람도 뭔가 꽂힌 게 있으면 약간 미쳐버리는 사람인거에요. 둘이 처음 만났는데 신이나서 떠들곤 책을 만들자고 결정을 했어요.
책을 만드는 과정은 어떠셨어요?
제가 일을 빨리 빨리 하는 타입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출판사에서 뭔가 요청이 오면 바로 처리하고 그랬는데, 그게 또 엄청 좋았나봐요. 보통은 관공서와 함께 일할 때 대답이 하루종일 걸리거나 요청 자료를 받기 어렵거든요. 그런데 제가 뭐든 2시간 내로 처리해주니까 그 편집자분이 ‘이 사람은 정말 책에 미쳤구나’ 라는 생각을 했대요.
제가 그때 일을 하면서 약간 마음이 떠나있는 상태였거든요. 연차가 쌓였는데 승진에서 누락되었어요. 제가 열심히 일을 한 것에 비해 제대로 된 보상을 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책에 몰두했던 것 같아요. 약간 독기가 올라서.(웃음)
책을 만들다보니까 프로그램을 정리한 것이랑, 상업 출판 책으로 나오는 것이랑 차이가 있더라고요. 원고를 보다보니 부족한 것이 많아서 또 할머니들 찾아가서 얘기해 달라고 조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안 하시려고 하는 분은 집으로 찾아가서 밥 먹으면서 얘기 듣고 그랬어요. 제가 많이 힘들게 해드렸는데 지나고 보니 재미있었다고 말씀들 해주시더라고요.
찾아보니 이 책 한권만 아니라, 다른 책들도 기획하셨더라고요.
‘오늘이 내 인생의 봄날입니다’라는 책도 만들었어요. 그 때도 제가 커피 타드린 걸 계기로 인연이 만들어졌죠. 할머님들이 직접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쓰시고 그 이야기를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이 그림으로 담았죠. 그걸 다산북스에서 편집해서 상업 출판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할머니들 시집도 냈어요. '자꾸 자꾸 사람이 예뻐져'라는 책이에요. 이 과정도 에피소드가 많죠.(웃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너무 궁금해요.
‘요리는 감이여’가 잘 된 이후로 여러 군데에서 할머니를 소개시켜달라고 요청이 와요. 어느 날엔 방송사에서 할머니들이 시를 쓰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할머니를 소개시켜달라고 하더라고요. 그 때 저는 다른 지역으로 업무 이동을 해서 처음엔 거절을 했어요. 방송을 도우려면 많은 품이 필요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 분도 계속 요청을 하시길래 결국 하게 되었죠. 이야기를 잘 하시고, 밝고 따뜻한 여사님을 추천드렸어요. 할머니가 엄청 웃음이 많으시고 프로그램 촬영을 하시는데 설레 하셨어요. 잠시 일이 있어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인데 이 일을 듣고 다음 날 바로 퇴원을 하셨대요.(웃음)
그런데 촬영을 하는 날 보니, 알고보니 할머니가 한글을 잘 못 쓰시는 거에요. 기획은 할머니의 일생을 돌아보고 시 쓰는 방법을 배우면서 직접 쓰는 거였는데 그게 어려웠죠. 그래서 시인과 함께 할머니의 이야기를 채록하고 입말을 시로 옮기는 작업을 했어요. 합작이라고 할 수 있죠. 방송은 아직 나가지 않았고 책이 나와서 얼마 전에 출판 기념회를 했어요. 할머니가 엄청 좋아하셨어요. 가족들을 다 초대하고 한복을 차려입으시고 출간 파티를 했어요. 저는 원래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감동 받아서 울기도 하고.할머니 쫓아다니고 매니저 하느라 힘들어서 울고.(웃음)
원래 사서라는 직업이 이렇게 프로그램도 많고 활동적인 직업인가요?
아니라서 제가 많이 힘이 들죠. '요리는 감이여'가 잘 되고 제가 한동안 정말 방송에 다니면서 할머니들 매니저를 다 했어요. 방송 3사에 다 가보고, 6시 내고향, 라디오 방송, 심지어 유퀴즈까지 나갔어요. 힘이 드니까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라는 생각으로 일해요. 일 벌이지 말아야지 다짐하고요.
그런데 이번에도 책 하나를 더 준비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처음 책이 엄청 잘되니까 편집자 분과 두번째 책도 만들고 싶었죠. 충남 지역에는 다문화 가족이 많다 보니까 이들하고 함께 뭔가를 해보고 싶단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요리는 감이여 할머니들처럼, 이들도 자신의 나라에서 먹는 가정식 잘 하는 요리들이 있을거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건 정말 미친 듯이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서천도서관에 발령을 받고 바로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할머니에 이어, 이주여성들의 요리책이라니. 흥미로운데요.
다문화이주여성에 대한 시선이 굉장히 극단적이잖아요. TV프로그램에선 깔깔 웃으면서 가족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결혼 이주여성이 나오는데, 한편으로는 미등록 체류자의 이미지도 있고요. 현실은 농가에서 일하고,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는 그런 일들도 있고요. 자신의 나라에서는 집밥을 차려먹는 사람들일텐데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건 할머니 책보다 더 어려웠어요. 언어의 장벽이 만리장성만큼 높더라고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채록을 해야 하는데, 말이 안 통하다 보니 라포 형성도 어렵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웠어요. 음식에 얽힌 일화, 감정이 담긴 이야기들을 기대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어요. 대화하기 위해서 계속 번역기를 돌리고. 그런 과정이 어려웠어요.
지금 서천도서관 관장으로 계신데, 다른 일들도 동시에 하셔야하잖아요.
그러니까요. 원고가 잘 안 나오는 걸 보면 참지 못하고 또 인터뷰를 하러 나가고, 그 와중에 기관장 역할을 해야 하고. 올해는 조금 바쁘게 일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만들어서 일을 하세요?
매일 반복되는 업무들은 그냥 하면 되요. 그런데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는 남들이 안 한 것, 재미있는 것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제가 한번 한 일을 두 번 못해요. 늘 재미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떠올라요. 그걸 막는 것이 숙제죠.(웃음) 일을 하면서 돌아보니 자기 만족감이 제일 중요한 사람 같아요. 사람들이 좋아하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도 만들어내고, 심지어 운이 좋게 결과까지 좋았으니깐요. 거기에 보람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럼 힘드신 적은 없으신가요?
있죠. 공무원은 승진으로 인정을 받는 직업인데 승진에 누락된 적이 있어요. 저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인정을 제대로 못 받는다고 생각해서 정말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참 했어요. 2년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나 이제 그만둘거야'를 습관처럼 말하고 다녔죠. 실제로 그만두고 책방을 하고 싶어서 땅을 알아보러 다니기도 했고요.(웃음)
그런데 책방으로 먹고 살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일들은 돈이 벌리지 않는 일인데, 책을 팔아서 그 일을 만들어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란걸 알았어요. 그렇게 2년을 방황을 하다가 결국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누가 돈도 내주고 월급도 주네? 좋은 일이잖아?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었죠. 관점이 바뀌니까 행복해지더라고요. 지금은 어쨌든 승진을 했는데 권한의 폭이 넓어져서 좋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눈치 안보고 할 수 있죠. 직원들이 도리어 '그래도 되요?'라고 물어요.
선생님이 일을 하면서 주변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아이디어가 많지만 사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을 하고 있어요. 아까 말씀드렸던 출판사 선생님들, 편집자들이 안 계셨으면 못 만들었을 거예요. 제가 수시로 투덜투덜 거리면서 귀찮게 하고 물어봐도 늘 자기 일처럼 도와주세요. 보통 할머니들, 시골 동네의 아이들, 이주여성들을 주로 만나서 프로그램을 해왔잖아요. 그들과 함께 하는 이유, 취지 같은 것을 잘 설명하고 설득하는 편인 것 같아요.
이번 도서관에선 올해 어떤 활동을 하세요?
아, 일을 안 벌이겠다고 다짐은 했지만 얼마 전에 좋은 아이디어가 또 생각났어요. 많은 도서관에서 생애주기별 책 꾸러미 활동을 많이 하는데요.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216명이에요. 굉장히 적은 편이죠. 그렇지만 규모가 작다 보니 이 아이들에게 세심한 접근이 가능한 거에요. 그래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책 꾸러미를 선물하고 싶었어요. 그것도 그냥 책을 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티커나 이런 정도를 넣어서 주려고 했죠. 그런데 뭔가 부족해서 주변에 또 도움을 요청했어요. 원래는 책가방 정도에만 넣으려고 했는데, 주변에 보자기 공예를 하시는 분이 있는거에요. 그래서 전화로 말씀드리니 "그 꾸러미는 선물이지 않니"하시면서 보자기로 예쁘게 싸서 선물하면 좋겠다고, 자기가 포장을 도와주시겠다고도 하셨어요. 저는 그냥 던졌을 뿐인데, 포장 디자인 여러 개를 보여주시면서 이건 어떠냐고 물어보시고. 정말 감사한 일이죠.
도서관에서 그런 일을 하는지 몰랐어요. 도서관 사서는 사실 여유롭고 느긋한 직업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심지어는, 함께 일하는 사서 한 분이 자료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누가 민원을 넣으셨대요. 우리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책을 읽는다고. 그 직원이 의기소침해져 있는데 저는 당당하게 읽으라고 했어요. 사서는 책을 다루는 직업이고 누군가 문의해왔을 때 대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냐, 사서는 당연히 책을 읽어야한다 편하게 읽으라는 말을 했어요.
서천은 작은 지역이다보니까 문화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요. 올해는 다양한 명사들을 모시고 한 달에 한 번씩 북토크를 하는 기획을 했어요. 도서관 강사료가 정말 짠데, 고맙게도 이런 작은 지역까지 와주시는 작가분들이 꽤 있었어요.
교육청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일의 흐름을 조금 알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에게 조금의 권한이 생겼죠. 조금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을 벌이지 않기로 했는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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