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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맥주와 사랑의 공간, 공주 원도심의 <미정작업실> 허미정

책과 맥주와 사랑의 공간

공주 원도심 <미정작업실> 허미정



공주 원도심의 매력은 금강으로 이어지는 제민천을 따라 걷는 길이다. 제민천의 차분한 분위기 사이로 골목골목 재미난 가게들과 옛 시장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그 제민천을 깊숙이 걷다 보면 맥주와 책이 어우러진 미정작업실을 만날 수 있다. 맥줏집일까? 책방일까? 공유서재일까? 맥주를 팔기는 하지만 편의점이나 술집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특별한 것들이 보인다. 책도 판매하긴 하지만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판매하진 않지만 함께 볼 수 있는 책도 큐레이션 되어 있다. 공유서재라고 할 수도 있고 맥줏집이라고 할 수도 있고, 책방이라고 할 수도 있는,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곳. 우리가 알던 단어로 묶이지 않는 미정작업실이라는 공간. 이 공간을 운영하는 허미정 씨는 작업실은 말 그대로 작업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본인의 집처럼 놀러 와 맥주를 마시면서 당신이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고. 공주라는 소도시에 내려와 자기만의 방식으로 멋진 공간을 운영해나가고 있는 허미정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미정작업실을 만들기 전엔 어떤 일을 하셨어요?

계속 서울에 살다가, 2018년에 회사를 그만뒀어요.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2017년부터 금산여관이란 공간을 자주 찾았어요. 금산여관은 전라북도 순창의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요. 집주인이 4년 반 동안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했고, 공중파에도 많이 나가서 유명한 곳이었어요. 그 당시에 제가 1년 동안 금산여관에 10번을 갔어요. 정말 많이 갔죠. 몸과 정신은 너무 지쳤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때였어요. 금산여관에 많이 갔기 때문에 주인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계셨어요. 2018년에 뭐 할지 정하지는 않은 상태에서 회사를 그만뒀고, 사직서를 내고 또 금산여관에 갔어요. 그런데 그때 집주인이 저한테 ‘너 회사 그만두고 뭐 하냐?’ 물으셨어요. ‘계획 없는데요.’ 했더니 ‘이거 한번 해볼래?’ 하셨어요. 집주인도 운영하다가 지쳐서 쉬고 싶으셨던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갑자기 금산여관의 운영자가 되었어요. 사업자도 바로 내고, 2019년 1월부터 2년 동안 운영했어요. 저는 재계약이 될 줄 알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생겨 잘 안됐어요.


그런데 어떻게 공주에 오게 되셨나요? 

영업 종료 공지 이후에 단골 게스트분들이 다음 행보에 대해서 궁금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한테 계속 공주에 가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한 거예요. 되게 신기하죠? 처음 한두 명까지는 무시했어요. 그런데 같은 이야기하는 사람이 6~7명 정도가 됐을 때, ‘공주엔 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2021년 2월에 영업 종료를 하고 3월에 공주 여행 계획을 짰어요.

그렇게 공주에 여행을 오게 됐어요. 그런데 공주에 오자마자 신기한 인연이 생긴 거예요. 그때 퍼즐랩이라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봉황재라는 숙소에 묵었는데, 거기서 우연히 마주친 분이 퍼즐랩 대표 권오상 님이었어요. 제가 금산여관을 운영했던 사람이라는 걸 알고서 말을 걸어주셨거든요. 그래서 이런저런 그동안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공주의 특징 있는 가게들과 골목들을 안내받게 되었어요. 공주의 정취가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혹시 한 달살이 할 만한 곳이 있냐고 물어봤는데, 글쎄 퍼즐랩에서 운영하는 청년지역살이 3주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3월 말에 일주일 동안 공주 여행을 하고, 4월에 ‘3주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5월에 다시 서울로 돌아갔죠. 그런데 ‘3주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퍼즐랩에서 저를 눈여겨보셨던 거예요. 같이 일해보겠냐고 제안이 왔어요. 그래서 5월부터 일을 하게 되었고, 공주로 내려와서 정착하게 됐어요. 신기하죠? 그렇게 퍼즐랩에서 10개월간 일한 뒤에 지금의 미정작업실을 열게 되었어요. 조금 숨 가쁘고, 길지만 이렇게 공주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신기한 인연들이 이어져서 공주에 정착까지 하셨네요. 그런데 퍼즐랩이란 회사를 생각보다 일찍 그만두시고 미정작업실이라는 공간을 시작하셨네요? 구체적인 구상과 고민 속에서 운영을 시작하셨을 거 같아요.   

세세한 구상을 하고 미정작업실을 시작했던 건 아니었어요. 저는 이 퍼즐랩 회사를 오래 다닐 줄 알았어요. 회사 일이 제법 잘 맞았어요. 동료들도 좋고, 대표님도 좋았어요. 제가 미정작업실을 시작하게 된 건 조금 우연이에요. 공주에 정착하고, 일을 하고 있을 때, 금산여관에 게스트로 방문했던 친구들이 공주로 여행을 많이 왔어요.

그분들 중에 10년 동안 음식점을 하시다가 번아웃이 되어서 정리하시고 공주에 여행을 오신 분이 있어요. 그분이 공주 원도심에 반해서, 이곳에서 작은 식당으로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고 가게 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하셨어요. 조건도 상세하게 말씀해주셨죠. 그래서 원도심 마당발인 친구에게 좋은 공간이 나타나면 알려 달라고 부탁해 놓은 상태였어요. 얼마 후에 적당한 자리가 나왔다고 해서 보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연락을 드렸더니 이미 다른 곳에 계약하셨다는 거예요. 축하한다고 말하고 이야기를 끝냈어요. 그런데 계속 그 공간이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퇴근하고 돌아와서 그 공간을 지나가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뭘 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여기 계약을 해야겠다!’. 그래서 부동산에 바로 전화했어요. 알고 보니 제가 예상했던 가격의 절반 정도의 세만 내면 되었던 거예요. 당장 계약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죠. 월세가 낮으니까 놀이터로 삼아도 시작해볼 수 있잖아요! 처음에는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만 여는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공사를 시작해야 했는데, 돈이 없으니까 뭐든 직접 했어요. 일하면서 공간을 만들어야 했는데 너무 정리가 안 되고 힘들었어요. 그래서 퍼즐랩을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죠.


결정은 빠르게 했지만 공간을 운영했던 경험이 있으니 고민이 깊었을 것 같아요.

고민이 많았어요. 여기서 무엇을 할까? 뭘 하면 좋을까? 규모상 게스트하우스를 할 수는 없고, 허가도 안 날 것 같고요. 그래서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 했어요. 2년 동안 운영했던 금산여관의 기억이 좋았거든요. 그 공간의 기억이 왜 좋을까를 돌이켜 보니 사람 때문이었어요. 금산여관에서 만나게 된 친구들과 지금까지 꾸준히 인연이 이어졌어요. 금산여관을 자주 방문해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그 공간엔 어떤 확신이 있었대요. 금산여관에 가면 이익과 얽히지 않고 취향과 결이 비슷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 무의식적 확신이요. 그래서 실제로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친구가 되어 가고 나 없이도 서로 잘 어울려서 여전히 인연을 이어가는 거예요. 저는 이런 모습을 보는 게 좋더라고요. 제가 누군가를 재우는 것에 깊은 뜻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거예요. 그러면 잠이라는 매개체를 빼고, 그 매개체만 바꿔서 동일한 작용이 일어나는 공간을 만들면 되겠다고 결정했어요. 취향과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요. 그 뒤로 콘셉트는 빠르게 정할 수 있었어요.


그리곤 책과 맥주라는 콘셉트를 결정하신 것이 흥미로운 것 같아요. 어떻게 정하신 거예요? 

그런 현상을 계속 꿈꾼 거예요. 금산여관의 본채와 동일한 작용이 일어나는 공간이요. 동네에 사는 누군가 조용히 맥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고, 혹은 공주 원도심에 여행 온 사람이 찾아 줄 수도 있겠죠. 그렇게 조용히 각자의 작업을 즐기다가 어떤 연결이나 대화가 일어날 수 있잖아요.

그 대화의 매개체로 일단 책을 무조건 넣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대화의 주제로 삼는 것들이 기본적으로 여행이나 책이거든요. 그런데 서점은 명확히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공주 원도심에 이미 책방이 많아요.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고 여기에 올인하겠다고 생각했잖아요. 책방으로 선택하면 난 분명히 빨리 포기할 것이다. 수익이 얼마 안 나니까요. 그러면 수익이 날 수 있는 것은 커피 아니면 술이잖아요. 둘 중에 뭔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전 당연히 술이에요. 왜냐하면 커피는 마시는 것만 좋아하지 제가 깊게 공부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술로 정해야겠단 생각했어요.

창문에서 안쪽 공간을 보면 바로 술과 책이 가장 잘 보이게 세팅했어요. 모두가 인스타그램으로 검색해보고 오는 건 아니잖아요. 누군가는 지나가다 올 수도 있겠죠. ‘저기 맥주 있다. 맥줏집인가 봐’라고 생각했다가 멈칫하게 만드는 요인이 바로 저 서가예요. 사람들이 ‘그냥 술집이 아닌가? 책방인가?’ 이렇게 의문이 가게 된다는 거예요. 그게 제가 의도한 거예요. 와서 정말 그냥 술집인 줄 알고 들어오는 사람을 제가 다 막을 수는 없지만 최소로 줄이려고 해요. 인스타그램에도 술집 같은 느낌을 계속 자제하고 올리는 편이에요. 그런 방향을 잡았어요. 그래서 금산여관의 게스트였던 친구들은 미정작업실에 와보고는 딱 한 문장으로 여기를 표현해요. ‘여기는 제니가 했던 금산여관 같은 곳이다’라고요.


금산여관을 운영했던 경험과 인연이 촘촘히 지금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그때 2년의 경험이 없다면, 지금 공주에서의 저라는 사람이 없을 거로 생각해요. 그 2년 동안 저에게 새겨진 어떤 세포 같은 생각이 있어요. ‘이렇게 살아도 죽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가 인간극장이나, 성공한 사람의 다큐나 책을 보면 이 사람이 특별하니까 하는 거로 생각하잖아요. ‘실제로 이렇게 살면 굶어 죽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을 했죠. 그런데 막상 제 삶으로 옮겨와 보니까 생각보다 굶어 죽는 일은 아니더라고요. 확실히 체득하고 경험하는 일은 다르더라고요.

‘이렇게 살아도 살아지네’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제가 회사를 보험으로 들지 않고 미정작업실을 단독 사업으로 시작할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걱정을 굳이 안 하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든 분명히 될 거다. 그렇지만 이런 확신에는 근거 없다고 장난으로 말하곤 했어요. 사실 근거가 있는 거죠. 금산여관을 운영했던 시간이 증명해 줬어요.



미정작업실에 입고한 맥주들이 다양하고 특별해 보여요. 맥주를 고르는 방법이 있나요? 

 저도 마실 줄이나 알았지 술에 대해 잘 몰랐어요. 작년 1~2월에는 맥주를 잘 아는 분들한테 많이 여쭤봤어요. 그해 여름 정도부터는 먹어보며 키워드를 만들어갔어요. 맥주 IPA도 그냥 IPA가 아니라 맛의 특징이 있거든요. 키워드에 맞는 구글링을 하면서 이런 맥주는 이 브루어리가 잘 만드는구나 하면서 공부하기 시작한 거예요. 근데 저는 전문적으로 양조법을 공부하진 않았어요. 이 맥주와 이 맥주는 뭐가 달라요 물어보면, 여전히 과학적으로 설명을 못 해요. 그렇지만 일반소비자로서 직관적으로 맛과 향을 되게 간단하게 설명은 할 수는 있어요.

그리고 제가 단골손님들의 취향의 언어를 수집해봐요. 새로운 맥주가 들어왔을 때마다 물어봐요. ‘먹어봤을 때, 어때요? 근데 좋다, 싫다로 말하면 안 돼요.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고, 어떤 향이 난다고 설명해주세요’라고 말을 해요. 그렇게 맥주 취향의 언어를 수집해요. 그럼 이 친구는 IPA를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뉴잉IPA를 좋아하고 쓴맛은 좀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요. 보통 단골분이 오면 새로 입고된 맥주를 궁금해하잖아요. 그러면 단호하게 말할 수 있어요. ‘그건 아마 싫어하실 거예요.’ 그렇게 맥주를 찾고 골라요. 


맥주와 책도 있지만 미정작업실에서 기획한 작가의 술토크 프로그램을 보면 특별한 애정이 느껴져요. 어떻게 기획하셨나요? 

이 안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은 처음 공간 기획할 때부터 생각해 뒀던 것 들이예요. 작년 하반기에 진행했던 작가의 술토크 시리즈는 인테리어 공사할 때부터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던 기획이었어요. 난 이거를 할 거다. 작가 라인업도 이미 다 정해져 있었어요. 미정작업실의 매개체가 여행, 책, 맥주잖아요. 그럼 이 3가지 단어로 만들 수 있는 조합이 나와요. 여행과 책, 책과 술, 여행과 술 이런 식으로 조합을 만들 수 있잖아요. 술토크 프로그램 <쓰는 사람, 마시는 장면>이  첫 번째 조합 시리즈 토크였던 거예요. 나머지 조합의 토크들이 올해와 내년에 걸쳐서 계속 있을 예정이에요. 그 발화자들이 항상 작가가 될 거예요. 책을 단 한 권이라도 내셨던 분들로요. 그냥 여행만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여행도 좋아하면서 맥주도 좋아하면서 글도 쓴 사람을 모시려고 해요. 


미정작업실 공간을 보면 미정 님의 취향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인테리어는 어떻게 진행하신 거예요? 

저는 제 인테리어 취향에 대해서 늘 자신이 없었어요. 지금도 똑같아요. 전체 맡아주신 분이랑 인테리어 공사할 때 회의를 진짜 많이 했어요. 저는 인테리어 용어를 모르니까 되게 거칠게 설명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인테리어 담당하신 분이 제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공간들의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동안 캡처해 놨던 사진 20장 정도를 보냈어요. 쭉 보시더니 딱 웃으시면서 엄청 일관성 있고 취향이 있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뭔데요?’ 그랬더니 ‘미정 님은 매장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집을 좋아하네. 가게가 아니라 미정 님의 거실에 누가 놀러 온다는 느낌을 주고 싶은 거 아니에요?’ 그게 너무 맞는 표현이었어요. 진짜 한 문장으로 딱 정리를 한 거예요. 그렇게 방향을 잡았어요.



전체 인테리어를 맡으신 분은 어떻게 연결되신 거예요? 

미정작업실을 계약하고 공사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예산이 많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견적이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제가 퍼즐랩에서 일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친해졌기 때문에 계약했다는 소문이 빨리 퍼졌어요. 그렇게 소문을 들었던 가가책방 서동민 대표님이 재범 님에게 맡겨보는 게 어떠냐고 하셨어요. 재범 님은 마을에 계시는 분이고 원래 쉐프에요. 공주에서 음식점 하시다가 정리하시고, 당신의 집을 1년 동안 손수 지으면서 건축업으로 전향을 하신 분이었어요. 제가 수긍할 수 있는 가격으로 제안을 해주셨고, 재범 님이 운영하셨던 음식점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재범 님께 맡기게 됐죠.


 공주의 이 커뮤니티가 끈끈한 건 아니지만 안정적인 기회들을 계속 열어 두는 느낌이 들어요. 

이 커뮤니티는 뭔가 선을 넘지 않으면서 부담스럽지 않게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딱 도움을 주고 빠져요. 공주에는 제가 모르는 다양한 커뮤니티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아는 커뮤니티 안에 묶인 사람들은 확실히 이런 성향이 있기는 해요.


이 커뮤니티에서 부침이나 힘들었던 것은 없으셨나요? 

 제가 3월에 1주일 여행을 오고 4월에 ‘3주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5월에 이주했다고 했잖아요. 퍼즐랩에서 일해 보겠냐고 제안했을 때 가장 불안했던 몇 가지 요소가 있었어요. 그 중의 하나가 이 마을 사람들이랑 너무 친해져 버렸다는 거예요.

금산여관이라는 데서 날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을 했지만 저는 내성적인 사람이에요. 낯선 사람하고 즐겁게 대화하는 게 결코 스트레스는 아니지만 그런 시간을 보냈다면 다음 날 혼자 1~2시간의 시간을 보내야 채워지는 사람이죠. 공주에 정착하려고 할 때 잠깐 망설임이 뭐였냐면 내가 일주일 여행 하고 3주살이를 하면서 이 마을 사람들이랑 너무 친해져 버리면 어쩌지. 이게 사실 되게 불안했어요. 내가 혹시 이주했을 때 내가 불편할 정도로 너무 많이 침범하면 어떡하지? 저 굉장히 선을 잘 긋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우려였어요. 이 커뮤니티 사람들은 선을 넘지 않으면서 부담스럽지 않게,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딱 도움을 줘요. 잘 지키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이 그룹에서는 부침 없이 적응할 수 있었죠.

지역에 이주하는 분들이 의외로 이런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데 사람마다 선이 다 다르잖아요. 누군가는 맨날 반찬을 해다 줘서 불편하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서로의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말을 못 하죠. 저는 표현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의외로 사람들은 적정 거리를 기가 막히게 알아내거든요. 이곳의 사람들은 특히 더 잘하는 것 같고요. 가끔 이 사람이 나한테 호의를 베풀면 거절하지 못하고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일도 있거든요. 종종 이런 스트레스를 저에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냥 ‘말하세요’라고 말해요. 그러면 그 사람이 의외로 쿨하게 받아들일 거라고요. 저는 불편함을 말을 하는 사람이라서 부침이 없었어요.


앞으로 미정작업실이 어떤 공간이 됐으면 좋겠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지금처럼만 됐으면 좋겠어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아무나 오지는 않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여기에 표현된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은 연령, 국적, 직업,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거예요. 다만 이 공간에서 지켜야 할 것들과 누려야 할 것들을 정확하게 아는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품고 있어요. 그것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사실 저 혼자만 노력하는 건 안 되는 것 같고. 오시는 분들이 쌓여야 하는 것 같아요. 결국은 그 시간의 무게를 제가 견뎌야 할 것 같아요.


시간의 무게를 견디는 일이라고 하셨는데, 살아왔던 본인의 성향을 생각했을 때 잘 견디는 사람이신가요? 

대학생 때까지 제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어요. 만약에 회사로 들어가면 분명히 회사에서 내쫓을 때까지 다닐 거로 생각했거든요.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11년이 지났는데 네 군데의 일터가 있었어요. 2년, 2년, 5년, 2년 이렇게 11년을 일 했죠. 2년만 일한 게 많잖아요. 금산여관도 공교롭게 2년이에요. ‘나 좀 약간 의외로 쉽게 질려하나?’ 그런 생각은 들어요.

그렇지만 막연히 상상하는 것은 미정작업실을 계속할 것 같아요. 그런데 뭔가를 하나 더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게 뭔지 아직은 모르겠어요.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변화를 모색해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제가 개인적으로 공주에서 결혼을 할 수도 있죠. 그런 식으로 변화를 계속 만들어 나가면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꿈을 꾸고 계시나요? 원대한 꿈, 소박한 꿈?

소박한 꿈? 원대한 꿈? 뭐가 있을까요? 이런 말을 인터뷰에서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사실 너무 사랑이 하고 싶어요. 그걸로 친구들과 진짜 심각하게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웃음) 어쨌든 일에 있어서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기회와 인연이 나타났어요. 혹은 제가 시도를 해서 다 이루었는데, 왜 그 영역은 이렇게 안 될까. 진짜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게 너무 하고 싶어요. (웃음)

그리고 기획할 때,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과 잘될 것, 이 사이에서 늘 좋은 타협점을 찾는 운영자로 남고 싶어요. 다행히 작년에 했던 4번의 시리즈 술토크는 금방 마감이 되고 잘 됐어요. 올해도 제가 하고 싶은 행사를 재미있게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어요. 조바심 내지 않고요. 그렇게 미정작업실이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사랑과 일, 어느 것도 놓치지 않겠어! (웃음)



미정작업실을 소개하는 말로 '취향의 공간'이라고 쓰려다가 '사랑의 공간'으로 고쳐 쓴다. 요즘엔 취향이란 말이 때론 얄팍하게 느껴지기도 하니깐. 그렇지만 취향이란 말은 오랜 시간 자기 몸으로 쌓아온 어떤 '좋은 것들'의 집합체다.  미정작업실은 취향은 사랑을 향하고 있다. 자신을 궁금해하고, 사람을 궁금해하는 마음. 책과 맥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도시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구 돌려주고 싶은 공간엔 분명 사랑이란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 

따뜻한 볕이 많은 공주의 원도심에서 그가 꼭 좋은 사랑들을 이루어내길. 사랑과 일, 어느 것도 놓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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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 미정작업실 허미정     글·정리 | 기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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