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회문제'라고 인지되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충남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혁신가들을 발굴하고 인터뷰하여 

사회혁신 인적 기반의 토대를 다지는

사회혁신가 발굴 및 저변 확대 프로그램

사회를 바꾸려는 마음, 그 움직이는 마음들. 충남청소년인권문화네트워크 신아롱&윤한용

사회를 바꾸려는 마음, 그 움직이는 마음들

충남청소년인권문화네트워크 신아롱&윤한용



충남청소년인권문화네트워크에서 일하는 동료/부부 활동가.

 노동하는 청소년들이 겪는 부당한 일에 함께 대응하고, 충남 전역의 학교나 기관을 방문해 학생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노동, 노동권, 인권 등 사회적 삶을 지키고 가꾸어나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신아롱 씨와 윤한용 씨는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청소년 권리찾기 지원, 정책연구 등을 진행하는 ‘충남청소년인권문화네트워크_청소년노동인권센터’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부부다. 아롱 씨는 자신과 한용 씨를 ‘짝꿍’이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밝은 목소리를 지닌 사랑스러운 아롱 씨와 내내 차분하지만 종종 재치 있는 농담으로 사람들을 웃기던 한용 씨는 각기 다른 매력으로 빛나면서도 또 서로 어울려 발산하는 케미가 돋보였다. 좋은 짝꿍인 것이 분명한 사람들.

여느 날에 비해 조용히 지나던 평일 오후, 밀크티 향기가 은은한 아산의 한 카페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아롱 씨와 한용 씨는 명함을 건네며 ‘가장 애정하는 물건’이라고 강조했다. 이 명함으로 많은 사람과 연결되고, 만남이 시작된다니 그럴 수 있겠다. 그 명함에는 앞면에 적힌 이름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뒷면에 깨알 같은 글씨로 근로기준법을 쉽게 설명해둔 것이다. 특별한 명함이었다.

아롱 씨와 한용 씨는 자신들을 ‘혁신가’라기보다 ‘운동가’로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충남에서 청소년 노동인권운동이 필요한 이유, 오래 전에 시작된 번아웃, 그럼에도 계속 이 운동을 해나가는 힘에 대해 이야기했다. 더디게 변하는 세상에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희망을 놓치지 않는 두 사람과의 인터뷰는 공감과 함께 시종일관 큰 웃음을 주었던 유쾌한 시간이었다.


 

두 분 명함에 ‘충남청소년노동인권지킴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두 분이 각자 걸어오신 길이 궁금합니다.

윤한용  저는 11년차 해고 노동자입니다. 지역 민주노총에서 상근으로 활동하면서 청소년 노동인권 주제를 알게 됐어요. 저도 특성화고 출신인데, IMF 때 현장실습을 하다가 정리해고를 당했고 또 처음 취업을 했던 회사에서도 6개월 만에 정리해고를 당했어요. 파란만장했던 10대와 20대 초반의 경험이 청소년 노동인권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한 근거가 된 것 같아요.

신아롱 저는 대학에 입학하고 바로 학생회에 들어갔는데, 뭐 완전 속은 거죠. 밥 사주고 술 사주는 거에 혹해서 들어갔거든요. (웃음) 그때는 학생회가 학내에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유일한 곳이었어요. 농활도 가고 노동자 연대 활동도 하고… 그러다 보니 농민과 노동자가 멀리 있지 않은 사람, 나와 가까이에 있는 존재가 됐어요. 또 제 전공이 청소년 상담이기도 해서 이 일이 낯설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두 분께 워크시트를 한 장씩 드렸잖아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 스스로 가장 나다운 시간을 보내는 공간을 그려달라고 부탁드렸는데, 무엇을 그리셨나요?

신아롱   지금 이 가게가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밀크티 맛집이에요. 가끔 이 카페에 멍 때리러 오거나 노트북 들고 일하러 오거나 해요. 사무실에 있기 싫을 때 있잖아요. 제 닉네임이 ‘장미 한 송이’라서 제목에 ‘장미 한 송이 같은 아롱이의 숨통 트이는 밀크티 맛집을 소개해요.’라고 적었어요.

가끔은 스마트폰이 곧 지옥이구나 생각이 들어요. 언제 어디에서든 실시간으로 업무를 다 볼 수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가장 나다운 시간을 꼽자면 스마트폰을 놓고 침대에 대(大)자로 누워서 자는 때예요. 나를 가장 많이 내려놓는 시간이죠. 소진된 느낌으로 쉬는 거긴 하지만요. 오늘 여러분을 사무실이 아니라 여기로 초대한 이유도 제 숨통을 트이게 하는 공간이어서예요.

윤한용  저는 운전대를 그렸습니다.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운전하며 이동하는 데 들여요. 주로 외부 일정으로 수업을 하러 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 시간이 제게는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는, 진짜 편하게 있는 시간이에요. 신호에 대기하면서 잠깐씩 풍경을 바라보고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 거죠. 그 공간이 한편으론 피곤하지만 제겐 가장 편안한 공간이에요.

 

‘지옥’이나 ‘피곤’ 같은 말들이 마음에 걸리네요. 하루에 에너지가 10만큼 있다고 가정해볼까요? 아롱 님과 한용 님의 하루를 어떻게 나눠볼 수 있을까요?

신아롱   5는 교육하는 데에, 3은 운전하는 데 쓰는 것 같아요. 이동이 정말 많아요. 이 큰 동네 충남을 동서남북으로 다 쏘다녀야 하니까요. 1은 사무실에서 실무 일에 쓰는 것 같고요. 나머지 1은 ‘대(大)자’에 쓰려나. (웃음) 교육이 없으면 하루의 8을 밀크티에 쓸 수 있겠네요. (웃음) 아, 집에 가고 싶다.

윤한용   저도 비슷해요. 거의 같은 활동을 하니까요. 일하며 9를 쓰고, 남은 1을 쪼개서 0.5는 잠을 자고 0.5는 집안일을 해요.

 

그 0.5에 관해서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은데요. 아롱 님의 하루에는 가사노동은 없었는데요. (웃음) 두 분, 집에서는 어떻게 생활하고 계신가요?

신아롱  변명을 좀 하자면 제가 늘 더 늦게 집에 들어가요. 그래서 더 빨리 귀가 하는 사람이 집안일을 돌보는 거죠. 저보다 집안일을 잘하기도 하고요.

윤한용   아, 저만 집안일을 하는 건 아니에요. 서로 나눠서 해요. 그런데 집안일이 늦어지면 그만큼 쉴 시간이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좀 더 일찍 들어온 내가 좀 더 빨리 끝낼 수 있으니까 집안일을 좀 더 하게 되죠.

 

0.5를 담당하는 그의 모습



불만은 없으신가요?

윤한용  불만이요? 불만 있죠. (모두 웃음)
신아롱   왜 불만이 없겠어요. 서로 마찰이 있거나 부딪히면, 싸워서 둘 중에 하나가 이겨야 될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서로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느라 애쓰기도 해요. 짝꿍 활동가들이 지역에 은근히 있거든요. 노동 영역에 꽤 있는 편이에요. 이렇게 같이 일하면 어쨌든 피곤해요. 그런데 그나마 다행인 게 저희는 종일 같이 있을 시간이 없어요. 교육도 따로 다니고 일정이 분리되어 있으니까 그건 참 다행이에요.

그리고 철저히 공과 사에 대한 구분을 명확히 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저희는 대화방도 나눠져 있어요. 공적인 얘기는 공적인 방에서 하고 사적인 얘기는 사적인 방에서 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가끔 헷갈려서 잘못 올릴 때도 있어요. (웃음) 그러면 제가 “국장님, 여기 사적 대화방인데요.” 하면, 바로 내용을 지우고 공적인 대화방에 다시 올리기도 하고 그래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활동이 계기가 되었나요?

윤한용   2011년이었죠.

신아롱   그때 제가 충남노동인권센터에서 상근을 했는데 그 사무실을 이쪽 해고 노동자들이 먼저 쓰고 있었어요.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웃음)

 

어떻게 시작된 거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는 없나요?
신아롱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모두 웃음)


  "저희는 대화방도 나눠져 있어요. 

공적인 얘기는 공적인 방에서 하고 사적인 얘기는 사적인 방에서 하기로 했지요. "



일은 두 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일 하는 건 재미있나요?

신아롱   재미있어요. 청소년들이 제 수업을 듣고 뭔가 깨달았다거나 저와 상담하면서 이야기하길 잘했다고 표현해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뿌듯하죠. 한번은 소년원에 갔다 온 청소년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 왜 낙인효과란 게 있잖아요. 누구도 이 청소년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또 이 청소년이 일할 때마다 월급을 제대로 받질 못해요. 소년원 출신이라는 걸 빌미로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막 대하는 거죠. 이 청소년이 저한테 와서 하소연을 하는데 얘기를 마치고 마지막에 이 한마디를 하더라고요. “말이라도 하니까 속이 시원하네!”라고요. 되게 안타까웠어요. 참 억울하겠구나, 누군가 이 청소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준다면 미래도 달라질 수 있을 텐데 싶기도 하고. 그럴 때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잘하고 있다’ 생각하곤 해요.

윤한용   저는 반반인 것 같아요. 현장에서 느끼는 공허감 같은 게 있어요. 지칠 때가 많죠. “어차피 사장한테 얘기해도 안 돼요.” “어떻게,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잘 생각이 안 나요.” 노동하는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에요. 너희들에게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계속 이야기하지만, 솔직히 성인들도 직장생활 하면서 그런 목소리를 내기 어렵잖아요. 청소년을 보호해줘야 할 사람들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게 좀 아이러니해요.

신아롱   사실 수업하는 학교에서 변화를 느끼는 일은 많지 않아요. 그래서 가능하면 청소년들에게 후기를 받으려고 해요. 그런 피드백도 안 받으면 너무 힘들어요. 계속 소진되는 것 같고… 속상하죠. 그러다가도 정성스런 후기를 보면 힘이 나죠.


  


두 분 모두 ‘소진된다’ , ‘지친다’는 말씀을 계속 하시네요.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해 나가는 이유는 무엇이고 동력은 어디에서 오나요?

윤한용   2018년부터 활동을 해오면서 한 번도 쉬지 못했으니까 소진된 건 맞을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놓지 못하는 건, 뭔가 바꾸어야 되니까요. 1997년에 제가 처음 현장실습을 나가서 받았던 시급이 1900원이었어요. 지금은 9160원인데, 그럼에도 우리가 일하는 곳은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고 이야기하면 청소년들이 거기서 좀 놀라거든요.

신아롱   왜 수업 시간에 그런 절망적인 얘기를 하세요? (웃음)
윤한용  현실도 알려줘야 되니까요. 사회에서 아무리 목소리를 높이고 노조 활동을 한다고 해도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노동 환경은 좋아지지 않아요. 그래도 한 명이 이야기할 때보다는 두 명이, 또 세 명이 이야기할 때가 더 낫겠죠. 조금은 변해갈 테니까요. 그런 믿음으로 계속 해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신아롱   제가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이런 활동을 할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에요. 지역에는 노동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특히나 청소년노동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더 없어요. 그러니 제가 할 수밖에요. 이제 정부가 바뀌고 노동과 인권이 더 천대받는 시대에 살게 됐어요. 충남 도정도 그렇고요. 노동과 인권 관련 예산을 삭감하고, 있는 조례도 폐지하라는 청원이 막 올라와요. 상황이 이러니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한 명이 이야기할 때보다는 두 명이, 

또 세 명이 이야기할 때가 더 낫겠죠. 조금은 변해갈 테니까요. "


"지역에는 노동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특히나 청소년노동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더 없어요. 그러니 제가 할 수밖에요. "



지니의 램프를 얻어서 세상의 단 한 가지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상상해볼까요? 딱 한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말하고 싶으세요?

윤한용   단 한가지요? ‘만수르 되게 해주세요.’

 

(모두 웃음) 만수르가 되면 뭘 하실 건가요?

윤한용  센터 사무실부터 내야죠. 곰팡이 안 슬고, 벽에 물 안 새는 곳에 청소년들이 오고 싶은 공간을 만들 거예요.

신아롱   만수르가 됐는데 사무실을 내서 일을 한다니…. (웃음)

 

노동인권이나 청소년 노동문제를 해결해달라, 뭐 이렇게 기도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요?

윤한용  저도 그런 고민을 해봤는데, 무언가를 해달라고 하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신아롱   그럼 저는 만수르랑 같이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할래요. 만수르가 저를 버리지 않기만요. 돈 많다고 나 버리면 어떡해…. (웃음)

윤한용  돈으로 해결하려는 것처럼 오해될 수도 있지만, 노동도 그렇고 지역에서의 사회활동도 그렇고 사람만으로는 될 수 없거든요. 누군가 사람이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지금 현재 구조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재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신아롱   그래서 희생, 봉사 이런 말 하는 거 사실 너무 싫어요. 혁신가라고 표현하셨지만 활동가들에게 희생과 봉사를 강요하고, 특히 젊은 세대에게 자꾸 창의적인 것과 아이디어와 새로운 것을 자꾸 요구하는 거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활동가의 삶은 원래 그래’ 하고 답하는 사람이 있어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에요. ‘원래 그런 건 없다’고, 청소년들에게도 강조하거든요. 활동가, 혁신가들도 마찬가지예요.

 

이 인터뷰 사업 이름이 ‘혁신살롱’이에요. 충남의 혁신가들을 인터뷰할 예정이고, 아롱 님과 한용 님이 제 첫 번째 인터뷰이가 되어주셨는데요. ‘혁신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혁신가로 소개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윤한용   저는 운동이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러워요. 혁신이라는 표현은 기업에서 많이 쓰는 말인데, 저희에게는 약간…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혁신, 창조… 이런 말을 앞세워 조직을 개편한다면서 결국 노동자를 해고하잖아요. 운동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의 표현인데, 혁신이라고 하면 뭔가를 뜯어고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신아롱   혁신이라는 말은 오염됐어요. 일반적으로 혁신가라고 불리면 뭔가 발명왕 같은 느낌이지 않나요? 예전에는 운동가라고 부르던 것을, 어느 날부터 활동가라고 칭하고 지금은 혁신가라고 또 얘기하는 이런 상황…. 점점 옅은 표현을 쓰는 것 같아요. 운동의 ‘동’이 움직일 동(動)이잖아요. 사회를 바꾸려고 하는 움직임이요. 저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운동가로 저를 소개하고 싶어요.

 

"무언가를 해달라고 하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한용 씨는 지역에 활동가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연령과 세대를 떠나 지역 안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하는 자리, 자유롭게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을 이었다.

오늘도 아롱 씨와 한용 씨 두 사람은 운전대를 잡고 각자의 차를 몰아 더 많은 청소년을 만나기 위해 충남 곳곳으로 움직인다. 이 두 사람의 움직임으로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뀐다면 그건 평등과 존중, 용기와 가능성이 가득한 모습일 것만 같다.

   



인터뷰이 | 신아롱&윤한용    글·정리 | 김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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